초한(楚漢)의 영웅 한시로 만나다 119

조수삼,「詠史 八首」

by 박동욱

짐승의 명부였던 한나라 공신록

龍蛇猴馬與狐鴻(용사후마여호홍)  용·뱀·원숭이·말·여우·기러기들이

逐鹿原頭叙狗功(축록원두서구공)  사슴 쫓던 들판에서 개의 공적 기록하네.

戱把一篇禽獸簿(희파일편금수부)  한 권의 짐승 명부 장난스레 펼쳐보니

紛紛粧點八年中(분분장점팔년중)  분주히 꾸며댔던 팔 년의 세월이네.

조수삼,「詠史 八首」


[평설]

이 시는 한고조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고 공신록을 제정하는 과정을 동물 우화 형식으로 풍자한다. 권력과 충성, 기록과 왜곡의 문제를 신랄하게 드러내고 있다. 1구는 용과 뱀, 원숭이, 말, 여우, 기러기라는 여섯 동물을 나열하면서 다양한 인물 군상을 상징했다. 여기서 용은 황제를, 뱀과 여우는 음험한 책사나 간신을, 원숭이는 잔꾀와 처세에 능한 자를, 말은 무공의 상징을, 기러기는 충절을 뜻하는 존재로 보인다.

2구의 “사슴을 쫓는 것”은 천하를 둘러싼 쟁탈전을 상징한다. 구공(狗功)은 한고조가 공신들을 개에 비유하며 “제군은 짐승을 잡았을 뿐이니 공이 개에 해당하고, 소하는 개를 풀어 지시한 자이니, 공이 사람에 해당한다”고 한 데서 왔다. 이는 공신록의 기록이 실제 공적보다 권력자와의 친밀도에 좌우되었음을 풍자한 것이다.

3구는 이 모든 공적 서술이 실은 짐승들의 명부일 뿐이라고 조롱했다. 기록과 역사도 권력자의 입맛에 따라 얼마든지 조작될 수 있음을 드러낸다. 4구에서 ‘팔 년’은 한나라 건국(기원전 202년)부터 기원전 198년까지의 8년을 가리킨다. 이 기간에 유방은 공신록을 작성하면서 동시에 한신·팽월 등 주요 공신을 숙청했다

공신록은 공정한 인물 평가가 아닌 야합적 권력 배분 명단이었다. 영웅이나 공신이라는 칭호조차 동물적인 욕망의 부산물이다. 공신록에서 진실은 사라지고, 해석만 남았다. 정당한 공적대로 공신부에 실린 것이 아니라, 권력자의 입맛에 따라 기록된다. 어디 이런 일이 그 옛날에만 있었겠는가? 지금도 그 자리에 어울리는 인물이 정당한 공적으로 평가받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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