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楚漢)의 영웅 한시로 만나다 122

조수삼, 「詠史 八首」

by 박동욱

은혜라는 이름의 복수극

辱己少年拜中尉(욕기소년배중위) 모욕한 소년에게 중위 벼슬 내렸으니

淮陰還似矯人情(회음환사교인정) 한신의 인정도 억지로 꾸민 것 같네.

平生不忘頡羹嫂(평생불망힐갱수) 형수가 국솥 긁은 일 잊지 못했으니,

未信劉郞長者名(미신류랑장자명) 유방의 장자라는 이름은 못 믿겠네.

조수삼, 「詠史 八首」


[평설]

이 시는 한신과 유방의 관용이 복수의 위장임을 밝히고 있다. 먼저 한신의 이야기다. 한신은 성공한 뒤에 가랑이 아래로 기어가는 수치를 안겨 주었던 사람을 찾아갔다. 그 사람을 중위(中尉)로 삼고는 여러 장수에게 “나를 모욕할 때 내가 어찌 이 사람을 죽일 힘이 없었겠는가? 죽여 봐야 이름이 나지 않겠기에 참고 견디어 오늘날이 있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이는 진정한 관용이 아니라 계산된 연출이었다.

다음은 유방의 이야기다. 한고조(漢高祖) 유방이 미천했을 때 항상 손님들과 함께 형수 집에 들러서 밥을 얻어먹곤 하였다. 형수는 그가 손님과 함께 오는 것이 싫어 매양 솥 밑을 딱딱 긁어서 국이 없는 것처럼 하여 손님이 그냥 돌아가 버리곤 했는데, 솥을 들여다보면 국이 남아 있었다. 한고조가 이 일로 형수에게 원한을 품었고, 천하를 통일한 후 그 아들에게 솥을 긁는다는 의미의 힐갱후(頡羹侯)라는 작위를 내렸다. 자신을 모욕한 사람의 아들을 후에 봉하는 것은 관용은커녕 치졸한 복수였다. 이처럼 유방의 행위는 정치적 연출이 깔려 있으니, 그가 베푼 은혜를 순수하게만 볼 수가 없다. 특히 ‘유랑(劉郞)’이라는 격하된 호칭으로 유방의 ‘장자(長者)’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해체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위대한 통치자’의 이면에 감춰진 비열함을 직격하였다.

이 시는 권력자의 은혜가 복수의 또 다른 형태이며, 그 어떤 '관용'도 순수한 동기에서 비롯된 적 없음을 증명한다. 한신과 유방 두 사람은 모두 복수를 포장하며 은혜로 기록하려고 했다. 역사가 기억하는 관용의 순간들은 대부분 승자의 복수가 교묘하게 포장되었을 뿐이다. 그들의 관용은 용서를 가장해서 상대에게 오명과 상처를 간직하게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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