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민(洪聖民),「樊噲」
영웅에서 변절자로
突入鴻門快倒危(돌입홍문쾌도위) 홍문에 뛰어들어 위기를 뒤집었건만
柔腸變作呂家兒(유장변작려가아) 연약한 맘 여씨 집안 아이로 바뀌었네.
天心欲護劉家物(천심욕호유가물) 하늘마저 유씨 왕조 지키려 한 듯하니
去汝軍門左袒時(거여군문좌단시) 군문에서 좌단하며 너를 내칠 때였구나.
홍성민(洪聖民),「樊噲」
[평설]
이 시는 번쾌의 운명을 충신에서 의도치 않은 변절자로의 전락으로 읽어낸다. 1·2구에서 그는 홍문연에서 용맹한 행동으로 유방을 구한 영웅이지만, 여씨 집안과의 혼인은 그를 개인적 애정과 공적 충성의 갈등 속으로 내몰았다. 유장(柔腸)은 번쾌의 부드러운 성정을 뜻하지만, 아내 여수(呂須)에 대한 깊은 애정이 정치적 중립성을 잃게 만드는 계기로 작용했음을 보여준다. 3구는 겉으로는 한나라의 정통성을 부각하면서도, 실제로는 ‘천명’을 앞세운 권력이 어떻게 충신을 변절자로 내몰 수 있는지를 역설한다.
특히 4구의 ‘좌단(左袒)’은 유방 사후 여씨 일족 숙청 당시 주발이 군사들에게 “여씨를 지지하면 오른쪽 어깨를, 유씨를 지지하면 왼쪽 어깨를 드러내라”라고 지시했던 상징적 행위다. 시인은 이를 통해 번쾌가 비록 적극적 변절은 아니었으나, 가족에 대한 애정이 정치적 중립성을 잃게 만들어 결국 숙청 대상이 될 운명임을 예고한다. 진평이 번쾌를 압송한 것은 단순한 의혹이 아니라, 권력이 개인의 인간적 관계를 용납하지 않는 모순을 폭로하는 사건이었다.
번쾌는 의도하지 않은 변절의 길로 들어섰다. 아내에 대한 사랑이 그를 여씨 일족의 이해관계에 자연스럽게 연루되게 했고, 결국 유방의 의심을 사는 결과로 이어졌다. ‘홍문의 영웅’은 개인적 애정과 공적 의무의 충돌이라는 인간적인 딜레마 앞에서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