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륭(屠隆)의 사라관청언(娑羅館淸言)
23. 나물 한 접시와 초가삼간
밥상에는 나물 한 접시만 올리고, 고기와 생선을 영원히 끊었다. 스님을 공양하거나 손님을 대접할 때, 어찌 육갑신(六甲神, 도교의 신장)을 불러 음식을 마련할 필요가 있겠는가? 초가집 세 칸으로 겨우 비바람을 막고, 땅을 쓸고서 향을 사르니, 어찌 아이들을 시켜 빗자루를 묶게 할 필요가 있겠는가. 신선 좌자의 초탈한 삶은 직접 보지 못했으나, 왕유의 번거로움에서 오히려 깨달음을 얻는다.
盤餐一菜, 永絶腥膻. 飯僧宴客, 何煩六甲行廚; 茅屋三楹, 僅蔽風雨. 掃地焚香, 安用數童縛帚. 未見元放翛然, 尙覺右丞多事.
[평설]
이 글은 나물 한 접시와 초가삼간으로 도가(道家)의 ‘소박함’과 불교(佛家)의 ‘무소유(無所有)’를 실천하는 삶을 이야기 한다.
시인은 두 가지 사례를 들어 자신의 철학을 드러낸다. 첫째, 나물 한 접시와 초가삼간이라는 최소한의 것으로도 스님과 손님을 정성껏 대접할 수 있기에, 신선 좌자처럼 육갑신을 부려 신통력으로 음식을 준비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둘째, 좌자의 초월적 자유는 직접 경험하지 못했지만, 왕유가 시를 쓰며 자잘한 일에까지 신경 쓰고 분주하게 살았던 삶을 떠올리며 오히려 단순함과 고요함의 가치를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이처럼 진정한 자유는 초월적 능력이나 화려한 삶이 아닌, 단순하고 소박한 삶에 있음을 강조한다. 그저 최소한의 것에 만족하며 고요히 사는 사람이야말로 참된 자유인이라는 것이다. 현대인은 이를 ‘미니멀리즘’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동양의 청빈(淸貧)은 단순한 절약을 넘어 욕망 자체를 내려놓은 초월적 경지라고 할 수 있다.
[참고]
자루와 관련된 고사는 본래 왕포(王褒)와 관련이 깊지만, 여기서는 왕유의 사례로 해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