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조선의 스무 가지 원칙

5장 돈화(敦化): 사람의 뿌리를 두껍게 하다 3

by 박동욱

3) 치성(致誠): 조상을 모시는 정성

조지산(曺芝山) 호익(好益)은 제사 의례에 있어 더욱 신중하였다. 온갖 제기(祭器)를 따로 보관하였다. 집안사람 중에서 일을 맡은 자들은 모두 미리 목욕재계하게 하고, 베를 가지고 입과 코를 가린 뒤에야 비로소 그릇을 씻고 음식을 차리게 하였다. 과일 중에 껍질이 있는 것은 그 겉껍질을 벗긴 다음에 물로 깨끗이 씻었다. 우물물은 미리 휘저어 맑게 하고, 다른 사람이 함부로 퍼가지 못하게 하였다. 식초와 장도 또한 별도로 두어 평상시에 쓰지 않았다. 이 모든 일들은 후세 사람들이 본받을 만한 것이었다.



조호익은 제사에 정성을 다했다. 예법은 외적 형식과 내적 정신이 조화를 이룰 때 완성된다. 제사상을 풍성하게 차리기보다 경건한 마음으로 제사를 준비해야 한다. 그가 제사용품과 제수를 준비하는 정성은 차라리 종교적 경건함에 가깝다. 이처럼 제사는 일상적인 것과의 차단을 통해 조상을 생각하고 한 발 가까워지는 일이었다.

제사는 이제 철 지난 풍경이 되고 말았다. 제사의 근본적인 의미가 탈색되고 나니 번거로운 노동으로만 기억될 뿐이다. 지금은 내용을 위해 형식을 과감하게 축소하거나 생략한다. 그러나 형식이 내용을 규정하기도 한다. 형식이 사라지면 내용도 따라 사라져버린다. 제사가 사라진 자리에는 앙상한 ‘나’만 남고, ‘가문’이나 ‘조상’은 지워져 버렸다.





사예(司藝) 김숙자(金叔滋)는 제사를 지낼 때에, 바칠 음식과 그릇을 반드시 정결하게 하려 힘썼으며, 음식 준비를 맡은 자들에게 경계하여 타일러서, 비록 과일 조각이나 생선이나 고기 토막이라도, 제사에 쓰지 않으면 아이들이나 고양이, 개에게 주어 먹이지 못하게 하였다.


김숙자(金叔滋, 1389~1456)는 김종직의 아버지다. 이 기록은 김종직이 기억한 아버지의 모습을 담고 있다. 먼저 제수와 제기를 정결하게 준비시켰다. 제사 음식은 제사를 치르기 전에 과일 조각이나 고기 토막이라 할지라도 아이들이나 동물들에게 맛보게 하지 않도록 하였다. 제사 음식은 조상을 위해 준비된 것이니, 마땅히 먼저 조상이 흠향한 뒤에 맛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는 일종의 위계적 질서였다. 앞서 조호익이 속(俗) 된 일상이 성스러운 제사를 더럽히는 것을 막았다면, 김숙자는 성스러운 제물이 속으로 함부로 전용되는 것을 차단했다.






또 보은 현감직에서 물러나, 옥천으로 들어가 살게 되었다. 소사(小祀, 명산(名山)과 대천(大川)에 대한 제사)를 지내려 하자, 그의 어머니께서 책망하며 말씀하셨다.

“가난하고 궁핍한 것이 이와 같은데, 어떻게 제수를 마련하려 하느냐?”

공이 온화한 말로 무릎을 꿇고 절하며 아뢰었다.

“허락만 해주신다면, 제가 힘닿는 대로 마련해 보겠습니다.”

제삿날이 되어 차려놓은 것을 보니, 신위마다 밥과 국, 좁쌀 가루로 만든 떡, 채소가 한 그릇씩 담겨 있을 뿐이었는데, 그 차림새가 몹시 정갈하였다고 한다.




제수조차 변변히 마련하기 힘들 만큼 가난했다. 집안 사정이 뻔한데 제사를 지낸다고 하니 조헌의 어머니는 걱정이 앞섰다. 나중에 제삿날이 되어 제상을 보니, 밥, 국, 떡, 채소 각각 한 접시뿐이었다. 그렇지만 정결하기 이를 데 없는 제사상이었다. 제사상에 풍성한 제수를 갖추면 본인도 만족스럽고 남들 보기에도 떳떳하다. 그러나 제사의 본질은 제수의 가짓수에 있지 않고, 제수를 마련하는 마음에 달려 있다. 세상에서 가장 소박한 제사상이지만 거기에 담긴 마음은 전혀 작지 않았다.






영남에 한 선비가 있었다. 그는 경서를 깊이 좋아하고 바른 행실을 닦고 실천했다. 선조의 무덤이 그 고을에 있다 전해오나 그 정확한 장소를 잃어버려서, 이미 여러 대에 걸쳐 찾지 못했다. 선비가 진심을 다해 찾아 나섰으며, 여러 해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모든 곳을 두루 샅샅이 살피고, 만나는 사람마다 으레 물어보았다. 갑자기 여든 살 노인을 만나니, 노인이 말하기를 자기가 어릴 때 그 무덤을 알았다 하며, 선비를 데리고 가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이곳이오. 예전에 묘갈과 묘표가 있었으나, 마을 사람들이 그 묘지를 갈아엎으며 자손이 찾아오는 것을 꺼려, 금지하고 묘갈과 묘표를 버렸소.” 선비는 속으로 생각하되, 노인의 말이 비록 이와 같으나, 뚜렷한 표지나 증거가 없어서 갑자기 믿을 수 없다고 여겼다. 드디어 그 무덤에 제사를 지내고, 지석(誌石)을 찾기 위해 앞뒤 좌우를 두루 파헤쳤으나, 끝내 얻는 것이 없었다. 흙을 다시 덮고 돌아왔다. 그날 밤 꿈에, 그 선조가 사람을 시켜 그를 불렀다. 선비가 나아가 찾아뵈니, 모습이 훤칠하고, 몸가짐이 엄숙하였다. 선비에게 말하였다. “나는 네 선조이다. 네가 내 무덤을 찾는 성의(誠意)가 지극하니, 효자라 할 만하다. 낮에 네가 지석을 찾던 무덤은 과연 내가 묻힌 곳이지만, 내 지석은 무덤 왼쪽으로 사십 보 떨어진 곳에 있다. 가까운 데서 찾으니 어찌 발견할 수 있었겠는가? 내가 너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효도를 가상히 여겨, 너를 불러서 가르쳐 주노라.” 선비가 두려운 마음으로 이를 듣다가 깨어났는데, 말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했다. 마음으로 몹시 놀라고 이상히 여겨, 다시 그 무덤에 제사를 지내고, 꿈속의 가르침을 따라 지석을 찾았으니, 마치 부절(符節)을 맞추듯 정확히 들어맞았다. 그것을 읽어보니 과연 그의 선조의 것이었다.




어떤 선비가 선조의 무덤이 있는 장소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몇 해 동안 백방으로 알아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인이 와서 무덤의 장소를 가리켜 주었다. 노인이 가르쳐 준 곳에서 지석(誌石)을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지석이란 죽은 사람의 인적 사항, 무덤의 위치와 방향 등 중요한 정보를 기록해 무덤에 묻은 판석이나 도자기 판을 말한다. 무덤 앞이나 옆에 묻어서 무덤이 망실되었을 때 찾을 수 있게 만들어준다. 지석을 찾을 수 없으니 무덤을 찾는 일도 포기해야 했다.

꿈속에서 선조가 사람을 시켜 지석이 묻힌 정확한 위치를 알려준다. 다음날 그 장소에 가보니 지석이 있었고 무덤을 찾을 수 있었다. 세상에는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신비한 일들이 많다. 선조에 대한 지극한 정성이 천지신명을 감동시켜 꿈을 통해 현몽한 것이다. 수십 년을 포기하지 않은 간절함이 무의식 깊은 곳까지 닿아 꿈이라는 형태로 해답을 끌어낸 셈이다. 예전에는 ‘가문’이나 ‘조상’같은 단어로 한 개인이 가로와 세로축으로 촘촘하게 이어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 개인이 너무나 필요 이상으로 비대해졌다. ‘나’만 생각하고 ‘우리’는 모두 사라져버렸다. 나는 갑자기 평지돌출한 존재가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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