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앞에 붙인 글 37

–조선의 좌우명-

by 박동욱

생각을 가라앉히고 곰곰이 생각하라


배움이란 말은 『서경』 열명에 처음 나오고,『논어』 첫머리에 요체가 실려 있다네. 배움이란 무엇인가. 성인이 행했던 일을 본 받는 것이네. 그러니 옥돌을 자르고 썰고 쪼고 갈듯 배움을 닦아야 하네. 노여움을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고 잘못을 두 번 반복 하지 않는 것은 안씨(顔氏)의 배움이었고, 충신(忠信)하고 배운 것을 익힘은 증자(曾子)의 학업이었네. 이것을 행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 성인이 어찌 다른 사람이겠는가. 생각을 가라앉히고 곰곰이 찾음이 바로 배움의 근원이다.

學之爲言, 肇自說命. 魯論篇首, 又挈其領, 學之維何. 效聖之爲. 切之磋之, 琢之磨之. 不遷不貳. 顏氏之學, 忠信傳習, 曾子之業, 爲之則是, 聖何人焉. 潛思玩繹, 乃學之原.

-이현일(李玄逸, 1627~1704), 「好學箴」




[평설]

이 글은 배움에 대한 잠언이다.『서경(書經)』, 「열명(說命)」에 “생각의 처음과 끝을 배움에 둔다면 저도 모르게 덕이 닦일 것입니다.[念終始, 典于學, 厥德修, 罔覺]”라 하였으니, 옛날 부열(傅說)이 고종(高宗)에게 경계한 말이다. 또,『논어』의 첫머리에는「學而」편이 나온다. 이처럼 경전에서 중요시 할 만큼 배움이란 중요한 일이다. 그렇다면 왜 학문을 하는가? 구전문사(求田問舍, 자기가 부칠 논밭이나 집을 구하는 데만 마음을 쓴다는 뜻), 곧 제 몸 하나만 출세하기 위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성인의 행동을 본받으려고 배우는 것이다. 그러니 옥을 쪼고 갈고 자르듯이 자신을 혹독하게 단련하지 않을 수 없다. 안회(顔回)는 노여움을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았고, 같은 잘못을 두 번 반복하지 않았으며, 증자(曾子)는 하루에 세 가지 일로 자신을 반성 하였다. 이들처럼 철저한 노력 속에서 성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니, 성인이 꼭 태어난 자질에 의해서 오르는 경지는 아니다. 끝으로 배움의 근원을 찬찬히 생각해서[潛思] 곰곰이 찾는 것[玩繹]에서 찾은 것이 인상적이다. 결국 배운다는 것은 깊이 생각하여 남다른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어석]

1.『논어』「옹야(雍也)」에 “애공(哀公)이 묻기를 '제자들 중에서 누가 학문을 좋아합니까?' 하자 공자가 대답하기를 '안회(顔回)가 학문을 좋아하며 노여움을 옮기지 않고 과실을 두 번 짓지 않습니다' 했다.[哀公問弟子 孰爲好學 孔子對曰 有顔回者 好學 不遷怒 不貳過]” 하였다.

2. 『논어(論語)』, 「학이(學而)」에 “曾子曰,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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