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食色紳言』,[明]龍遵 著
[45] 여색은 마음 속에서 통제해야 한다
백민(伯敏, 汪昌壽의 호)이 정욕의 마음에 대해서는 그 그릇된 것을 강하게 통제할 수가 있었지만, 다만 그것을 유지하는 것을 오래하지는 못하였다.
상산(象山)이 이른다.
“다만 겉으로는 강하게 통제할 수 있다고 해도 안으로는 그 근본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면, 함양하는 공이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마음 속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정당한 지 알았다면, 어찌 모름지기 강하게 통제할 것이 있겠는가. 바로 이러한 말과 같다면 그대를 갑자기 아름다운 여인이 앞에 있게 하더라도 그대는 반드시 여색을 좋아하는 마음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마음이 늘 현재와 같다면 무얼 모름지기 강하게 통제할 것이 있겠는가.”
육상산이 덧붙여 말하였다.
“처음 배우는 자들은 능히 얼마나 많은 정신을 완전히 모을 수가 있겠는가? 겨우 잠시동안 가지고 있다가 흩어지게 된다. 나는 평소에 어떤 모습의 깊은 수양이 있었으므로 정신이 흩어지기 어려운 것이 많이 있었다.”
또 말하였다.
“조심하고 공경하여 밝게 상제를 섬기면, 상제께서 너에게 내려와 계시니 네 마음에 의심을 두지 마라. 전전긍긍 할 것이라면, 어찌 자기와 상관없는 일에 참견할 시간이 있겠는가.”
伯敏於此心, 能剛制其非, 只是持之不久耳. 象山云: “只剛制於外, 而不內思其本, 涵養之功不至. 若得心下明白正當, 何須剛制. 且如在此說話, 使忽有美色在前, 老兄必無悅色之心, 若心常似如今, 何須剛制.” 象山曰: “初學者能完聚得幾多精神? 纔一霍便散了. 某平日如何樣完養, 故有許多精神難散.” 又曰: “小心翼翼, 昭事上帝, 上帝臨汝, 無貳爾心, 戰戰兢兢, 那有閑管時候!”(此是象山完養工夫。)
[평설]
정욕의 마음을 외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런 방식은 잠시 동안은 모르겠지만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내적으로 변화가 일어나야 완전한 변화인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야 아름다운 여인이 앞에 있어도 흔들림이 없게 된다. 억지로 참는 것이 아니라 아예 참을 마음조차 없는 경지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