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마지막 한시 9

-절명시(絶命詩)-

by 박동욱

태허에서 왔다가 태허로 돌아가네


[1]

死生一理自能通 사생 같은 이치란 걸 저절로 통달 했으니

斯世元來弊屣同 이 세상 원래부터 헌신짝 같은 것이네.

只有君親餘寸念 다만 임금과 어버이 있어 한 치 생각 남았으니,

應知耿耿九原中 응당 저승에서 잊지 못할 줄을 알리라.


[2]

來自太虗返太虗 태허에서 왔다가는 태허로 돌아가니,

淸明一氣復其初 청명한 기운 하나 처음 상태 회복한 것이네.

世人那識吾歸處 사람들 내가 갈 곳 어찌 알 수 있으랴,

杳杳靑天萬里餘 아득한 푸른 하늘 만 리나 먼 곳이네.

김진규(金鎭圭), <絶筆>




[평설]

이 시는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에 지은 것이다. 삶과 죽음은 같은 것이니 이 세상이란 헌신짝처럼 홀가분에게 버릴 수 있다. 헌신짝[弊屣]이란 표현은 공명이나 관직을 두고는 흔히 쓰이긴 하지만, 이처럼 세상을 헌신짝에 빗댄 경우는 흔치 않다. 다만 저승에서도 임금과 어버이에 대한 생각은 그대로 일 것만 같다.

기는 태허에서 생기고 모여서 만물을 생성한다. 기가 흩어지면 함께 만물은 소멸하나 기는 다시 태허로 돌아간다. 세상 사람들 중에 아무도 경험해 보지 못한 먼 저승으로 떠나갈테니 사람들은 그 어디로 갈 것인지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삶에 대해 커다란 집착과 미련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끝내 버릴 수 없었던 것은 임금과 어버이에 대한 마음이었다. 충효(忠孝)란 죽음의 순간에서도 놓칠 수 없는 삶의 궁극적인 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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