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좌우명-
만족함을 알았다면 그쳐라
옛날 은(殷)나라 때에 이윤(伊尹)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탕(湯) 임금과 태갑(太甲)이 대우해 주었어도 오히려 사양하고 물러남을 생각했네. 한(漢)나라가 일어날 때에는 유후(留侯) 장량(張良)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천자와 마음이 통하였어도 또한 신선 적송자를 좇아 노닐었네. 성현(聖賢)도 오히려 이와 같았는데 하물며 그보다 못한 다른 사람들은 어떠 하겠는가!
공명(功名)이란 예로부터 지키기 어려웠네. 세력은 항상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권세는 오래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네. 화와 복은 서로 이어지고, 성공과 실패는 운수가 있네. 군자가 귀하게 여기는 것은 만족을 아는 것뿐이네. 그러니 이미 만족을 알았다면 여기에서 그쳐야 하리니 그침과 그치지 않음에서 편안함과 위태로움으로 나뉘네. 그 기미가 나에게 달려 있으니 어찌 선현(先賢)을 스승으로 삼지 않겠는가.
昔殷之時, 有若伊尹, 遇湯與甲, 猶思退遜. 逮漢之興, 有若留侯, 天授相知, 亦從仙遊. 聖賢尙爾, 何況其餘! 功名之際, 自古難居. 勢不可常, 權不可久. 倚伏相乘, 成虧有數. 君子所貴, 知足而已. 旣知其足, 斯可以止, 止與不止, 安危所別. 其機在我, 盍師先哲.
-민제인(閔齊仁, 1493~1549), 「止足箴」
[평설]
권세나 부귀는 모두다 잠시 누릴 수 있을 뿐이다. 원래부터 내 것이 아니었으니, 연연하거나 집착할 필요가 없다. 일정한 때가 되면 남들에게 그 자리를 주저 없이 양보해야 한다. 하지만 이처럼 단순하고 명료한 해답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이것을 실천하기란 여간 힘들지 않다. 자동차를 몰 때 자신도 감당하기 힘든 속도를 내면 차체가 좌우로 심하게 흔들려서 제동하기 어렵게 되는데, 이것을 fish tail이라 한다.
이처럼 욕망도 제동장치 없이 폭주하기 마련이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높은 지위와 많은 재산을 끝없이 욕망하게 된다. 다른 사람의 제지 없이 스스로 만족함을 알아 적절한 정도에서 자신의 욕망을 멈추는 일은 쉽지 않다. 스스로 그 임계점을 넘어갈 때 타의에 의해서 그동안 누리고 있었던 권세나 부귀마저 다 잃게 된다.
이윤이나 장량과 같은 킹메이커[king maker]도 스스로 사양하고 물러났다. 이제 고생이 끝나고 권력의 단 맛을 누릴 수 있는 그때에 주저 없이 그들은 떠났다. 이와는 달리 물러날 때를 실기(失期)한 한신(韓信)은 토끼 사냥이 끝나자 버려진 사냥개 신세가 되고 말았다. 무엇이든 다 한순간이고 영원한 것은 없다. “자 그쯤하면 되었다. 이제 그만하자.”
[어석]
제목인 ‘지족(止足)’은 『노자』의 “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에서 나온 말이다.
1. 은(殷)나라∼생각했네: 이윤(伊尹)은 탕(湯)임금을 도와 천하에 왕노릇 하게 하였다. 처음 탕왕(湯王)이 이윤(伊尹)을 초빙할 때에 폐백을 가지고 세 번이나 사람을 보내었다. 『맹자(孟子)』, 「만장상(萬章上)」에 이때 마음을 고쳐 초빙에 응하면서 그가 한 말이 실려 있다. 또 탕왕(湯王)이 세상을 뜬 후 태갑(太甲)이 탕왕(湯王)의 법도를 전복시키므로 이윤이 그를 동(桐) 땅에 3년간 유폐시켜 과오를 뉘우치게 하였다. 이후 태갑이 과거를 뉘우치자 그를 다시 왕위에 올렸다. 『서경(書經)』, 「이훈(伊訓)」은 이윤이 태갑을 훈도코자 지은 글이고, 또 「태갑(太甲)」上에는 이윤이 태갑을 뉘우치게 하려고 두 번 세 번 간곡한 말로 올린 글이 실려 있다. 이윤은 마음만 먹었으면 자신이 왕노릇 할 수도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2. 한(漢)나라가∼노닐었네: 한나라를 통일하는데 일등공신인 장량(張良)은 천하통일 후 몸을 보전하기 위해 세상사를 버리고 적송자(赤松子)를 따라 선인이 되어 놀았다고 전해진다.
3. 의복(倚伏): 화(禍)와 복(福)은 서로 인연(因緣)이 되어 생기고 없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