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좌우명-
스스로 경계하다
나이가 쉰이 되는 가을 구월 초하루에 자경잠(自儆箴)을 지어서, 아침저녁으로 보면서 스스로 힘쓰려 한다. 가까운 듯 하다가 멀어지고, 얻은 듯 하다가 잃어버리게 된다. 멀어졌다가 이따금 가까워지기도 하고, 잃었다가 이따금 얻기도 한다. 아득하여 어찌할 줄 모르는 듯하다가, 밝아서 보이는 듯도 하다. 빛나던 것이 어두워지기도 하고, 아득하던 것이 간혹 밝아지기도 한다. 그만 두려 해도 차마 그럴 수 없고, 힘써 해보려 해도 그러기엔 힘이 부족하다. 스스로 책망하고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함이 마땅하다. (거백옥은) 쉰 살에도 마흔 아홉 살까지의 잘못된 점을 알았고, (무공은) 아흔 살에도 억시를 지었는데, 이는 옛날에 스스로 힘쓰던 일이었다. 오히려 한순간도 게을리 하지 아니 하였으니 힘쓰고 힘쓸지어다. 자포자기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더냐?
五十歲秋, 九月初吉, 作自儆箴, 朝夕觀之, 庶以自勉. 若近焉而遠之, 若得焉而失之. 遠矣而時近也, 失矣而時得也. 茫乎無所措也, 赫乎如有覿也. 赫乎或昧焉, 茫乎或灼焉. 將畫也不忍焉, 將疆也不足焉. 宜其自責而自忍焉. 五十而知非, 九十而作抑, 斯古之自力也. 尙不懈于一息, 勉之哉勉之哉. 自暴自棄, 是何物邪?
-이색(李穡, 1328∼1396), 「自儆箴」
[평설]
이색이 쉰 살에 지은 글이다.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이지만 여전히 삶이 불투명하고 불가해(不可解) 하다는 느낌만이 가득하다. 가까운 듯하고 얻은 듯도 하며 잃어버린 듯도 하고 얻은 듯도 하며 밝은 듯도 하고 어두운 듯도 하다. 그래서 지쳤으니 그만 두자 하다가도 그럴 수는 없고, 악착같이 달려들어 무언가 하려다가도 힘이 쑥 빠진다. 그러니 끊임없이 자신을 독려함이 마땅하다. 거백옥은 쉰 살에도 마흔 아홉 살까지의 잘못에 대해서 반성을 하였고, 위 무공은 95세의 나이에도 시를 지어 자신을 몰아붙였다. 사람은 쉼 없이 반성을 거듭해서 삶의 좌표를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쉰 살만 넘어도 어른 대접을 받고 싶어 하고, 예순 살이 넘으면 원로나 대가(大家) 대접을 받으려 한다. 자신은 아집과 편견 속에 빠진 채 남들에 대해 교조적 훈시를 늘어놓는다. 여기에는 남들에 대한 교만한 평가만 있을 뿐, 자신에 대한 혹독한 반성은 없다. 그러니 자기반성과 자기 검열이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과연 그것이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어석]
1. 그만두려 해도: 『논어』「옹야(雍也)」에 보인다. 공자의 제자 염구(冉求)가 “선생님의 도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마는, 힘이 부족합니다.”라고 하자, 공자가 “힘이 모자라는 사람은 중도에서 그만두니, 지금 너는 스스로 포기하는구나.”라고 하였다.[冉求曰 非不說子之道 力不足也 子曰 力不足者 中道而廢 今女畫]
2. 힘써 해보려 해도: 『주역』 건괘(乾卦)의 상(象)에 이르기를, “하늘의 운행이 굳세니 군자가 이를 보고서 스스로 힘을 쓰면서 쉬지 않는다.〔天行健 君子以自强不息〕” 하였다.
3. 쉰 살에도 마흔 아홉 살의 잘못된 것을 알았고[五十而知非]: 거백옥(蘧伯玉)은 50세에 49세까지의 잘못을 다 깨달아 반성했다고 전해진다.
4. 아흔 살에도 억시를 지었으니[九十而作抑]: 춘추시대 위 무공(衛武公)이 95세의 나이에도 억(抑)이란 시를 지어 자신을 경계하였다. * 억은 『시경(詩經)』. 「대아(大雅)」의 편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