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물 긷고 불 때야 하리
1. 많기도 많은 노비들
노비는 최하층 신분이었다. 보통 ‘종’이라 불렀는데 ‘노(奴)’는 사내종, ‘비(婢)’는 계집종을 의미한다. 다른 말로 ‘복례(僕隷)’·‘여대(輿臺)’·‘장획(臧獲)’·‘예복(隸僕)’·‘예어(隸御)’·‘예인(隸人)’·‘려아(廬兒)’·‘하례(下隷)’·‘구종(驅從)’·‘별배(別陪)’·‘근수(跟隨)’ 등이 있으며, ‘가복(家僕)’·‘가동(家僮)’·‘비처(婢妻)’·‘시노(侍奴)’·‘가정(家丁)’·‘낭속(廊屬)’·‘고팽(高伻)’·‘솔정(率丁)’·‘낭한(廊漢)’·‘주졸(走卒)’·‘해노(奚奴)’·‘동지(僮指)’·‘차비노(差備奴)’ 등으로 부르기도 했다.
여종을 가리키는 명칭도 다양하다. 밥을 짓는 취비(炊婢), 빨래하는 세답비(洗踏婢), 반찬을 만드는 찬모(饌母), 바느질을 하는 침모(針母), 어머니를 대신해서 젖을 먹이는 유모(乳母), 시집갈 때 데려가는 교전비(轎前婢), 문안을 대신 드리는 문안비(問安婢), 장례 때 상주를 대신해서 곡을 해주는 곡비(哭婢) 등이 있다.
너무 귀여워하면 도리어 방자해진다는 뜻의 ‘종의 자식을 귀애하면 생원님 나룻에 꼬꼬마를 단다’, 아랫사람이 귀하게 되면 남에게 더 모질게 대한다는 뜻의 ‘종이 종을 부리면 식칼로 형문(刑問)을 한다’, 종은 먹어서 걱정이고 아내는 투기가 있어 걱정이라는 뜻의 ‘먹지 않는 종, 투기 없는 아내’ 등 노비를 다룬 속담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노비는 크게 공노비와 사노비로 나뉜다. 공노비는 선상 노비와 납공 노비로, 사노비는 솔거 노비와 외거 노비로 다시 나뉜다. 공노비와 사노비 중에 어느 노비가 더 고단했을까? �성호사설(星湖僿說)� 「공사천(公私賤)」에는 “사천의 부역은 공천보다 중할 뿐만 아니라 사천은 반드시 군액(軍額)에 보충하여 그것을 속오(束伍)라 하고 공천은 논하지 않으니, 국내에서 사천처럼 불쌍한 것이 없다”라고 나온다.
노비였지만 특출한 재능을 뽐냈던 이들도 많았다. 주인의 배려로 주인의 아들과 글공부를 했던 노비 출신 학자 박인수(朴仁壽), 무려 166수의 시를 남긴 여종 설죽(雪竹), 명창이 된 노비 석개(石介) 등이 그러했다.
제임스 팔레(James B. Palais)는 노비의 비율이 30%였던 조선 시대를 노예제 사회라고 규정한 바 있다. 논란이 있는 주장이기는 하나, 진위 여부를 차치하더라도 그 정도의 비중을 차지했던 만큼 노비는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이다. 노비 연구는 대부분 고문서, 야담, 일기를 통해서 이루어져왔다. 본고에서는 문집 속 자료와 일기를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며, 이 작업을 통해 노비의 생활상이 좀 더 구체화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