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극한 직업 1 -노비 3-

죽을 때까지 물 긷고 불 때야 하리

by 박동욱

3. 노비들을 달래주다


조선 시대 노비는 혹독한 노동에 시달렸다. 가사 노동으로는 집수리와 땔나무 마련, 농사, 물 긷기, 밥 짓기 등을 맡아 했고, 가외 노동으로는 물품이나 편지 전달, 주인의 외출 수행, 물건의 매매 또는 교환 등을 담당했다. 뿐만 아니라 고단한 유배나 외직 생활, 심지어 창의(倡義)조차도 주인과 함께해야만 했다.

주인은 이런 노비를 달래주기 위해 음력 이월 초하루를 머슴의 날로 정해 술과 음식을 푸짐하게 대접하기도 했고, 세종대왕은 출산한 노비에게 100일의 출산휴가를 주었고, 그 남편에게는 30일을 주었다. 이러한 정책에도 불구하고 노비의 생활이 고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오희문(吳希文, 1539∼1613)의 �쇄미록(鎖尾錄)�은 전쟁이란 상황 속에서 드러난 노비의 참상을 잘 보여준다.


저녁을 먹을 길이 없어서 콩 한 되쯤으로 죽을 쑤었는데 안에 넣을 쌀이 없어서 마침 종자로 쓰려고 두었던 오래된 차조 1되를 찾아 이웃집에서 쌀 5홉과 바꾸어왔다. 쌀을 넣고 끓여서 아이들과 반 그릇씩 마셨는데 내용물은 적고 물이 많으니 가소롭다. 그러나 이것도 종들에게는 돌아가지 않아서 모두 굶은 채 잤으니 한탄한들 무엇하랴.(1594년 3월 3일)


지난해 10월 아우가 서울에 들어가 신주를 모시고 나올 때 복지 식구도 나오려고 하는 것을 양식이 없어서 버리고 왔다고 했는데, 만일 그때 데리고 나왔더라면 네 모자가 모두 죽는 데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니, 더욱 가련한 일이다.(1593년 5월 8일)


지난밤에는 종들이 모두 노숙을 했다. 날이 춥기가 갑절이나 심한데 가련하고 가련하다.(1596년 12월 22일)

자신들이 먹기에도 양식이 턱없이 부족하여 거의 물에 가까운 말간 죽을 먹고 있고, 그마저도 종들에게는 돌아가지 않아 굶은 채 자고 있다. 또 양식이 다 떨어져 노비인 복지와 세 아들을 피난길에 함께 데리고 나오지 않아 이리저리 떠돌다 굶주려 얼어 죽었다는 소식과 아주 추운 날씨에 노숙하는 노비를 보고 안타까워하는 모습도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어제는 모 심느라 괴로워했고, 昨日移秧苦

오늘 아침 보리 걷느라 괴로웠네. 今朝取麥勞

종의 말에는 이미 원망 섞였는데 蒼頭言已怨

늙은 나는 시킬 맘이 변함없었네. 白髮癖猶牢

닭갈비 내주기로 서둘러 정했으니 早决投雞肋

누가 꿩고기 먹는 걸 그리워하랴. 誰懷食雉膏

가을이 되면 술을 많이 빚어서 秋來多釀酒

술잔 가득 따라 종들 위로하리라. 持滿慰羣曹

_이기발(李起浡), 「어린 종들을 달래주다(慰家僮)」

아무리 무던하게 일을 했던 종들이라도 연일 시달리는 농사일에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불만이 있어도 일이 다급하니 멈출 수도 없고, 어찌어찌 불만을 잠재울 수 있는 묘책이라고 급히 내놓은 방법이 종들에게 닭갈비라도 먹여주는 일이다. 가을에 추수를 무사히 마치면 술을 빚어 종들을 위로하리라 다짐하며 미안한 마음을 드러냈다. 힘으로 윽박질러서 해결하기보다는 이런저런 유화책으로 종들을 효과적으로 다스리고 있다.




집에 있다 해도 병을 앓지 않으랴만 在家豈不病

나그네 되면 가장 걱정할 만하네. 爲客最堪憂

저자에는 약방을 찾을 수 없고 市絶韓康賣

병상에서 고향 노래 듣게 되었네. 床聞越舃謳

나를 따라 수고한 지 이미 오래됐으니, 從吾勞旣久

널 보내서 병 걱정이 그치게 됐네. 送汝慮方休

이웃 노인의 후의에 힘입었으니, 賴有鄰翁厚

따뜻한 방에 함께 머물라 허락했네. 室暄許共留

_이인행(李仁行), 「어린 종이 병을 앓게 되어 박씨 성을 가진 사람에게 부탁해서 간호하게 하였다(家僮病瘡 托朴姓人看護)」

그렇게 종들이 여러 벅찬 일에 동원되다 임계점을 넘으면 병이 들기도 했다. 이 시는 이인행(李仁行, 1758∼1833)의 유배 시기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이때 종이 병에 걸렸다. 고단한 유배 생활에 병든 종을 위해 약 파는 곳을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고, 종은 서러움에 고향을 그리다가 향수병까지 얻었다. 주인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자, 이웃집 노인에게 종의 조섭(調攝)을 부탁했다. 이인행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또 다른 시 「아이 종으로 하여금 마음껏 청어를 사 먹게 하였다(使家僮盡意買喫靑魚)」에서도 그 병든 종을 위해 청어(靑魚)를 어렵사리 구해 먹였다는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병든 종을 외면하지 않고 가족처럼 돌보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그림 4.jpg 그림 4 오희문의 쇄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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