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명시(絶命詩)-
너는 과거장에 들어가지 마렴
[1]
실의하여 쓸쓸하게 지내온 서른 해,
현자 되길 바라던 숙원(宿願)을 미적대던 일 부끄러웠네.
비록 이제 죽음이 감옥 아래 있더라도,
차꼬 찼지만 도리어 천명(天命) 누린 사람 보게 되네.
忽忽悠悠三十春 希賢夙志媿因循
縱今死在圓扉下 桎梏還看正命人
[2]
기화(奇禍)에 억울하게 걸린 것이 운명이네
현인도 기화를 못 면했으니 내가 무에 서글프랴.
이날에 어버이가 강해로 나뉘어 있으나,
하늘 끝에 혼은 가서 마음대로 왕래하리.
奇禍橫罹命也哉 賢人不免吾何哀
雙親此日分江海 天末魂歸任往來
봉아(鳳兒)에게 부친 것이다. 죽고 사는 것은 운명에 있으니 다만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게 할 따름이다. 너는 모름지기 맘껏 놀지만 말고, 책 읽기를 부지런히 하여서 반드시 경서와 정호(程顥)ㆍ정이(程頤)와 주자의 글을 마음에 새겨 파고드는 것이 좋다. 내가 만약 죽거들랑 이 시를 남해(南海)에 보내야 한다. 이 뒤로는 밝은 세상 본 다 할지라도, 너는 과거 시험장에 들어가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이기지(李器之), <絶筆>
[평설]
이기지(李器之, 1690~1722)는 신임사화 때 아버지 이이명이 세제 책봉을 건의하다가 목호룡(睦虎龍)의 무고로 거제도로 귀양 갈 때 함께 연루되어 역시 남원으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서울로 압송, 의금부에 투옥되어 고문 끝에 죽었다. 아들인 이봉상(李鳳祥, ?∼?)도 원래 죽임을 피할 수 없었으나, 가동(家偅)을 대신 죽게 하고 도망하여 화를 면했다고 전해진다. 이 시는 그의 아들 이봉상에게 전하는 유언(遺言)의 성격이 짙다. 절명시가 유언의 성격을 띠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주로 남은 가족이나 지인들에 대한 당부와 미련을 전하고 있다.
병서(幷序)에는 아들에게 서목(書目)까지 밝혀 가며 독서를 면려했고, 위의 시를 남해에 있는 아버지 이이명(李頤命)에게 전달할 것과, 과거시험을 치르지 말 것을 당부했다. 자신의 불행한 삶이 자신과 부친의 관로(官路) 진출에서 말미암은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현인(賢人)을 꿈꾸며 살아온 평범한 삶이 기화(奇禍)에 얽힌 한스러움을 담담히 밝히면서, 죽어서도 부친과 재회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