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마지막 한시 20

-절명시(絶命詩)-

by 박동욱

달 밝은 창가에서 눈물이 흥건하네


閉戶呻吟浹數旬 문 닫고 신음하길 수십 일 하였으니

殘燈爲伴死爲隣 희미한 등불과 짝 되고 죽음과 이웃됐네.

臘梅有意吐新艶 섣달 매화 생각 있어 새로 고운 꽃 토하니,

松雪無端驚病身 소나무에 쌓인 눈이 까닭 없이 병든 몸 놀래키네.

昔日誰知今日苦 옛날에 누가 오늘 날의 고통을 알았던가.

此時還憶舊時人 이때 되니 옛 사람이 도리어 생각나네.

庭前孤鶴如千里 뜰 앞에 외로운 학도 천 리나 먼 것 같아,

月滿寒窓淚滿巾 달 밝은 창가에서 눈물이 흥건하네.


선친께서 임인년(1662) 12월에 병세가 아주 위중하더니 18일에 이르러서는 이 율시를 구술하여 나에게 쓰게 하셨다. 그런데 숨이 끊어지려고 해서 가까스로 말을 완성하고 구절마다 해석하여 그 상세함을 다 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입으로 부른지가 오래 되었다가 이제 비로소 그것을 쓰게 되었으니, 너희들은 그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아들들이 모두 울음을 삼키면서 물러났다. 24일이 되자, 갑자기 돌아가시는 슬픔을 맞게 되었으니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생각이 어찌 끝이 있겠는가. 이제 눈물을 닦으면서 꾹 참고 적으니, 더욱 슬픔에 숨이 막힌다. 先親於壬寅十二月, 病勢萬分危重, 而至於十八日, 口占此律, 俾不肖書之. 氣息奄奄, 堇成言語, 而句句解釋, 備盡其詳, 仍言曰, “口占久矣, 今始書之, 汝曹其識之哉” 不肖等皆飮泣而退. 二十四日, 奄遭終天之慟, 昊天摧慟之意, 曷有其極. 今者抆淚忍記, 尤用痛塞.

이건(李健), <絶筆>




[평설]

이건(李健, 1614∼1662)은 제주도 유배 체험을 통해 「제주풍토기(濟州風土記)」를 남긴 바 있다. 1662년 12월에 접어 들면서 병세는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위중해 졌다. 12월 18일에는 이 시를 구술하고 24일에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1, 2구는 수십 일 동안 생사를 넘나 드는 상황을 그렸다. 희미한 등불[殘燈]과 죽음이 짝과 이웃이 된다는 말에서 죽음을 목전에 둔 위태로움이 느껴진다. 3,4구는 이서우(李瑞雨)의 「海原君墓誌銘 幷叙」을 보면 분매(盆梅)를 보고 지었다고 나온다. 예부터 매화와 소나무는 세한고절(歲寒孤節)이라 했다. 추위에 굴하지 않는 매화와 소나무를 통해 죽음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섣달에 꽃을 피우는 매화와 쌓인 눈에도 푸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의 모습을 가상(假想) 했다.

5,6구는 멀쩡할 때는 죽음의 고통을 몰랐다가 적멸(寂滅)의 순간이 다가오니 그제야 옛 사람들도 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세상을 떠났을 것이란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7,8구는 뜰 앞에 한 마리 학이 있다. 고작 몇 발자국만 걸으면 나갈 수 있는 뜰이 천 리나 먼 것 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삶의 거리가 멀어진 만큼 죽음의 거리는 짧아졌다. 창가에 밝은 달이 보이는데 이승에서 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생각하니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흐른다. 이 시는 전반적으로 죽음에 직면해 있으면서 보일 수 있는 인간적 나약함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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