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명시(絶命詩)-
사약을 마시며
三朝忝竊竟何裨 세 조정에 벼슬살이 무슨 보탬 있었던가
一死從來分所宜 한번 죽음 본래부터 분수에 마땅하네.
唯有愛君心似血 오직 임금 사랑하는 피같은 마음 있으니
九原應遣鬼神知 마땅히 저승에서 귀신 보내 알게 하리.
김수항(金壽恒), 「후명을 듣다[聞後命]」
[평설]
문곡(文谷) 김수항(金壽恒, 1629∼1689)은 18세에 사마시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23세에는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했다. 두루 요직을 역임하고 1680년에는 영의정에 까지 올랐다. 숙종조 기사환국(己巳換局) 때 남인에게 탄핵 당해 진도에 유배되었다가 사사(賜死) 당했다.
후명(後命)이란 유배 간 죄인에게 사약을 내려 죽음을 명하는 일이다. 1689년(숙종15) 윤3월 김수항은 진도에서 유배 생활 중에 후명을 받았다. 김수항이 후명을 받던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전해온다. 그는 적소(謫所)에서 손님과 바둑을 두고 있었다. 한참 바둑을 두는데 흰 가마가 도착했다. 후명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아들 김창협과 김창흡 형제였다. 자식들에게 후명을 전달하러 온 사자(使者)를 미워하지 말라는 말을 전하고, 사자에게 간밤 꿈에 지은 시를 읊어 주고는 사약을 마시고 세상을 떴다.
또 다른 이야기도 전한다. 김수항은 아내 나씨가 자신을 따라 죽을 것을 염려해서 여러 차례 죽지 말라 당부했다. 그러고도 부족했던지 유서를 따로 남겨 “여러 자식들을 올바로 키우지 못하면 지하에서도 만나지 맙시다.”라 써서 아내에게 전했고, 부인은 이 글을 소중히 간직했다. 부인은 남편의 바람처럼 여섯 형제를 모두 훌륭하게 길러내고 세상을 뜰 때 남편의 글과 함께 묻혔다.
세 임금을 섬기며 벼슬을 했다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조정에 아무런 보탬도 없었던 것 같다. 한번 세상을 떠나 죽는 일이야 당연히 맞아야 할 일이다. 다만 마지막으로 꼭 전하여 알게 하고픈 사실 하나는 임금을 향한 진실한 마음이다. 그 마음만 소중하게 품고서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향한 원망과 정적(政敵)에 대한 원한은 따로 적지 않았다. 그 당시 김수항은 아들에게 남긴 유언인「遺戒六則」도 함께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