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수업
모든 것은 마지막이 있다. 2020년 8월 18일은 일평 조남권 선생님과 마지막으로 공부한 날이다. 사모님께서 석 달 전에 돌아가신 후 선생님의 건강과 정신은 상태가 더욱 나빠지셨다. 그간 20여년의 세월을 화요일 아침이면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선생님과 단 둘이 한문 공부를 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 공부 시간을 거르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너무나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그동안 20대였던 나는 50대가 되었고, 60대였던 선생님은 90대가 되었다.
선생님께서는 벌써 10년 전부터 경미한 치매 증세가 있으셨다. 그간 나는 남들 앞에서 불경스럽게 선생님의 치매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은 없었다. 선생님께서는 온 정신을 모아 치매와 싸우고 계셨다. 그렇게 정신이 온전치 않으셔도 남에 대한 정중한 예우와 태도만은 예전 그대로셨다. 기억은 그렇게 하나 둘 지워져 갔지만 한문책을 함께 읽는 일만은 가능하셨다. 기억 심층에 있던 것들을 두레박으로 건지시는 것만 같았다.
이제 어렵게 이어지던 공부도 마칠 때가 되었다. 요즘은 문안을 드리려 찾아뵙고 있다. 오늘 찾아뵈니 “자네 왔나” 하시고는 이불 안으로 쏙 들어가셨다. 선생님께서는 치매가 심해지셨지만 아직 나를 알아보신다. 나는 선생님께서 알아보시는 몇 안 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간의 세월들이 스쳐 지나간다. 모든 것은 이렇게 순간 만 머무를 뿐인데, 영원일 것이라 생각을 한다. 머물러 있을 때는 모르지만 떠나가면 머물렀던 시간과 상관없이 그저 순간일 뿐이다. 왜 그 순간들을 더 간절히 사랑하지 못했을까?
이렇게 문안을 드리려 찾아뵙는 시간도 많이 남아 있지 않을 것 같다는 슬픈 예감이 든다. 선생님이 세상에 없으실 생각을 하면 벌써 부터 눈시울이 붉어진다. 인간의 쇠락(衰落)은 외롭고 서글프다. 나는 선생님을 통해 노년을 선행 학습하고,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를 먼저 펴보았다. 어쩌면 우리가 가야 할 길도 이와 크게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선생님은 1928년 생으로 올해 93세이시다.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선생님께서는 가장 훌륭한 인격을 지니신 분이다. 선생님을 만난 건 내 삶에서 가장 큰 행운이다. 선생님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이제 선생님과 있었던 일들을 하나 둘 정리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