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食色紳言』,[明]龍遵 著
[8] 사치한 사람과 검소한 사람
왕증(王曾)은 손충(孫沖)과 함께 같은 때 과거에 급제하였다. 손충이 서울에서 왕증을 알현하니 왕증이 손충을 머물게 하고 밥을 먹었다. 자제들을 타일러서 이르렀다.
“벌써 손충을 서울에 머물게 하여 밥을 먹게 하였으니 만두를 마련하라.”
만두가 당시에는 풍성하게 잘 차린 음식이었다. 공이 타일러서 마련하게 하였으니 집에서 예사롭게 먹는 밥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한억(韓億)이 이약곡(李若谷)과 함께 여주(汝州)에서 여행을 하였다. 조태수가 이약곡을 청해서 문객으로 삼게 되자, 더욱 한억을 곤경히 대우하여서 매번 한억이 오게 되면 사람들에게 돼지고기를 차려오게 하였다. 이약곡이 항상 편지로 장난삼아 말하였다.
“고기 맛을 오랫동안 생각하게 되었으니 청컨대 형은 일찍 찾아오시오”
태수가 찾아오는 손님에게 예를 차리기는 했지만, 비록 돼지고기일지라도 항상 차려오지는 않았으니 옛 사람들이 절약하고 검소한 것이 이와 같았다. 지금은 만두와 돼지고기를 거친 음식으로 여겨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당(唐)나라 고시랑(高侍郞)의 형제 세 사람은 모두 높은 관직에 있었는데 손님을 초대하는 경우가 아니면 고깃국과 고기 산적 등 두 가지 반찬 이상은 먹지 않았으며 저녁 식사에는 오직 무와 박나물 만을 먹을 뿐이었다. 그래서 높은 관리들이 많이 나왔고 현달한 영화가 길고 오래도록 갔다.
두기공(杜祁公)이 정승이 되어서 집에서 밥 먹을 적에 국수 한 그릇 밥 한 그릇 뿐이었다. 타고난 성품이 청렴하고 검소해서 관청에 있을 때에도 관청의 촛불을 불사르지 않았고 기름 등불에 하나의 심지가 가물거려서 꺼지려고 하였는데 손님과 마주해서 청담(淸淡)을 나눌 따름이었다. 나이가 팔십이 넘도록 장수하다가 끝내 길하였다.
이덕유(李德裕)는 사치하여서 한 그릇의 국에 돈 삼만 전을 허비하다가, 늘그막에 남쪽 변방에 유배를 당했다. 구래공(寇萊公)은 젊은 나이에 부귀하여서 기름 등불을 켜지 않았다. 밤에 연회를 열어 코가 삐뚤어질 때까지 마셔서 촛농이 무더기를 이루었다. 그러다가 늘그막에 남쪽 지방으로 유배가는 화가 있게 되었다. 사람들이 모두 사치에 대한 보복이라 말했으니 믿을 만하다. 어찌 오직 다만 신하뿐이겠는가.
천보(天寶) 연간에 황제의 친척들이 서로 다투어서 먹을 것을 올려서 진수성찬이 모두 모였다. 그러나 나라를 잃고서 궁궐을 나와 도망쳤다가 함양(咸陽)에 이르렀는데 한낮이 되어서도 밥을 먹지 못하였다. 양국충(楊國忠)은 호떡을 사서 주고, 백성들은 거친 밥에다 보리와 콩을 섞어 주었으나, 황손(皇孫)은 손으로 움켜쥐기만 하고 배불리 먹지 못해서 울었다. 천자라도 음식을 낭비하는 일의 보복이 없을 수가 없는데 하물며 우리 보통 사람임에랴.
王公曾與孫沖同榜. 沖子京謁公, 公留吃飯. 飭子弟云; “已留孫京吃飯, 安排饅頭.” 饅頭時爲盛饌矣. 公飭安排, 則非常家飯可知. 韓公億與李公若谷同遊汝州. 趙太守請李爲門客, 尤敬待韓. 每韓至, 令設豬肉, 李常簡戲云; “久思肉味, 請兄早訪.” 太守禮門客, 雖豬肉亦不常設, 古人節儉若此. 今以饅頭豬肉爲粗食, 恒用, 何哉?
唐高錢侍郎兄弟三人, 俱居清列, 非速客不二羹胾. 夕飯惟食蔔匏, 所以簪纓濟濟, 顯融久長. 杜祁公爲相, 食于家, 一麪一飯, 天性清儉, 在官不然官燭, 油燈一注, 熒然欲滅. 對客清談而已. 故年逾八旬, 壽考終吉.
李德裕奢侈. 一杯羹費錢三萬, 晚有南荒之謫. 寇萊公少年富貴, 不點油燈, 夜宴劇飲, 燭淚成堆, 晚有南遷之禍. 人皆以爲奢報, 信矣. 豈惟臣哉!
天寶中貴戚相競進食, 珍羞畢集. 失國出奔, 至咸陽, 日中未食, 楊國忠市胡餅, 民獻糲飯雜以麥豆, 皇孫手掬, 未飽而泣. 天子不能無暴殄之報, 而況吾人乎.
[평설]
손님이 방문하면 평상시 보다 음식에 신경을 쓰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왕증은 만두를, 조태수는 돼지고기를 손님들에게 대접하곤 하였다. 당시 만두와 돼지고기는 성찬(盛饌)에 속했다. 반면 고시랑 형제는 손님을 대접하는 경우가 아니면 단출하게 식사를 즐겨하였다. 두기공은 국수 한 그릇과 밥 한 그릇이면 충분히 만족했다. 이 두 사람 모두 살아생전 험한 꼴을 당하지 않고 영화를 누리다 삶을 마쳤다.
낭비를 하다 끝이 좋지 않은 인물들도 있었다. 이덕유는 국 한 그릇에 엄청난 돈을 허비하다가 유배를 떠났고 구래공은 촛불을 켜놓고 밤새 놀다가 끝내 유배를 갔다. 절대 권력을 누린 사람이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갖은 산해진미를 챙겨 먹었던 황손이 나라를 잃고 도망치다 끼니 걱정을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먹는 것이나 입는 것에 낭비하는 것이야 말로 미련한 짓이다. 좋은 음식도 늘 먹게 되면 입에 물리게 되고, 비싼 의복도 사는 순간에 잠깐 행복할 뿐 몸에 걸치고 나면 심드렁해진다. 이런 것들은 더더욱 인간을 공허하게 만들 뿐이다. 낭비는 작게는 집안을 크게는 나라를 망하게 만든다. 검소한 사람들은 늘 끝이 좋았고 사치한 사람들은 늘 끝이 안 좋았다. 사치는 부패와 긴밀히 연동되어 있다. 정상적이라면 누릴 수 없는 부가 비정상적인 상황에 놓일 때에 가능하게 된다. 그러한 부패는 단죄 받게 되고 사치는 비극적으로 막을 내리는 것으로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