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옛 사람의 음식남녀 9

『食色紳言』,[明]龍遵 著

by 박동욱

[9] 음식은 가볍게 만남은 무겁게


사마온공(司馬溫公)이 말하였다.

“아버지께서 군목판관(郡牧判官)이 되었을 때에 손님이 이르면 술상을 차려 대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더러는 세 순배나 다섯 순배를 돌리기도 하였지만, 일곱 순배를 넘지 않았다. 술은 시장에서 받아 왔고, 과일은 배, 밤, 대추, 감 뿐이었다. 안주는 포, 젓갈, 나물국 뿐이었고, 그릇은 자기(瓷器)나 칠기(漆器)였다. 당시의 사대부가 모두 그러하였다. 모임이 잦을수록 예는 깍듯하였고, 음식은 하찮으나 정은 두터웠다.

근래의 사대부 집에서 술은 궁중의 비법으로 빚은 술이 아니거나, 과일은 먼 지방에서 온 진귀한 것이 아니거나, 음식은 여러 가지 물품이 아니거나, 그릇이 상에 가득하지 않으면 감히 모임을 갖지 못하여서 일찍이 몇 개월 동안 장만하여 모은 뒤에야 편지를 보냈으니 풍속의 퇴폐함이 이와 같았다.”

공이 낙양(洛陽)에 있을 때에 문로공(文潞公, 문언박(文彦博))·범충선공(范忠宣公, 범순인(范純仁)의 시호)과 진솔회(真率會)를 약속하였으니, 거친 밥 한 그릇과 술 몇 순배였다. 시에 이른다.


隨家所有自可樂 집안 형편 따라 있는 걸로 스스로 즐기니

爲具更微誰笑貧 갖춘 것 변변찮다 뉘 가난타 비웃으리


재산을 소중히 여기고 재물을 기르는 것은 교화에 보탬이 있는 것이 적지 않다.


司馬溫公言其先公爲郡牧判官, 客至未嘗不置酒. 或三行,或五行,不過七行. 酒沽於市,果止梨栗棗柿,殽止脯醢菜羹,器用瓷漆. 當時士夫家皆然,會數而禮勤,物薄而情厚. 近日士夫家酒非內法,果非遠方珍異,食非多品,器皿非滿案,不敢作會. 嘗數月營聚,然後發書,風俗頹弊如是. 公在洛文潞公范忠宣公約爲真率會,脫粟一飯,酒數行,詩云 “隨家所有自可樂,爲具更微誰笑貧.” 惜富養財,有補風化不小.




[평설]

이 이야기는 허균의 『한정록』과 『소학』에 나온다. 사마온공의 부친인 사마지는 검소한 사람이었다. 음식은 변변찮았지만 정은 두터웠다. 잘 차린 음식이 모임의 의미를 반드시 깊게 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아버지의 영향이었는지 사마광(司馬光)도 이와 다를 바 없었다. 벼슬을 그만두고 낙양(洛陽)에 있으면서 사마단(司馬旦), 석여언(席汝言), 왕상공(王尙恭), 초건중(楚建中), 왕근언(王謹言), 송숙달(宋叔達) 등 일곱 사람으로 결성한 모임인 진솔회(眞率會)를 만들었다. 연령은 65세부터 78세까지이었는데 사마광이 가장 어렸다. 이 모임의 규칙은 술은 다섯 순배 이상을 돌리지 못하고 음식은 다섯 가지 이상을 넘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사마광이 지은 「진솔회(眞率會)」 시에, “일곱 사람 나이 합쳐 오백 세가 넘었는데, 꽃 앞에 함께 취하니 고금에 드문 일이네. 말경주와 닭싸움은 우리가 즐기는 일 아니니, 모시옷에 흰 머리털이 서로 비추네.”라고 하였다.

싫은 사람들과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어도 체하기 십상이니, 좋은 사람들과 정성껏 차린 음식 맛나게 먹으면 그뿐이다. 술자리에 마음에 맞는 사람만큼 좋은 안주는 없다.


[어석]

아버지: 여기서는 사마광(司馬光)의 아버지 사마지(司馬池)를 말한다. 그는 송(宋)나라 인종(仁宗) 때 사람으로 자는 화중(和中)이다. 사마지(司馬池)는 추밀사 조이용(曹利用)의 주달로 군목 판관이 되었다.


사마광.jpg 司馬光, National Palace Museum, Taip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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