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명시(絶命詩)-
마지막 수업
牀頭萬軸任塵埋 책상 위에 만 권의 책 먼지에 덮이게 두고,
一病支離百念灰 오래 끈 병환으로 온갖 생각 재 되었네.
時有小兒來習字 이때에 어린애가 와서 글자를 배웠으니
手將點畫敎均排 손수 점과 획을 가지고서 안배를 가르치네.
이재(李栽), <병을 앓는 중에 아이들의 법첩에 쓴다. 경술년 세상을 뜨기 엿새 전에 썼다[病中題小兒法帖 庚戌○易簀前六日]>
[평설]
세상을 뜨기 엿새 전에 쓴 시이다. 이때는 1730년이고 그의 나이 74세였다. 이 시를 쓰고 곧이어 병세가 심해지자 자제(子弟)들로 하여금 경전(經傳)을 다른 곳으로 옮기게 하고 남에게 빌렸던 책들을 돌려주게 하였다. 경전을 옮긴 것은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나쁜 냄새가 서책에 스며들까 염려해서였고, 책들을 돌려준 것은 병이 호전된 뒤에 다시 빌리려 해서였다.
오랫 동안 아픈 탓에 이런 저런 생각을 할 처지가 못 되었다. 그동안 책을 펴 보았을리 만무하다. 책상 위에 있던 책에는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다. 이것은 주인의 오랜 부재(不在)를 확인해 주고, 또 영원한 부재를 예기(豫期)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린애에게 글자를 가르친다. 여기서 어린아이가 누군인지는 구체적이지 않다. 연보와 행장에 따르면, 이때 어린애들이 새로 법첩(法帖)을 만들어 와서 거기에 써 준 시라고 나온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탓에 가르침은 더욱 간절해진다. 더 가르칠 수 없을 것 같다는 슬픈 예감과 조금이라도 더 가르쳐야 한다는 간절함은 그렇게 엇갈린다. 험한 세상을 살아갈 아이에게 이렇게 마지막 가르침을 남겨두었다. 균형을 갖는 것은 어디 글씨를 쓸 데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세상을 그렇게 살아라. 어디에도 치우치지 말고 균형감을 가지고 살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