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마지막 한시 26

-절명시(絶命詩)-

by 박동욱


빗돌에다 많은 글자 새기지 말라


[1]

嗜古初心脫俗氛 옛 것을 좋아하던 초심은 속된 기운 벗어나려 했으나,

自慚愚劣老無聞 어리석고 못나서 늙어서도 이름 없음 부끄럽네.

翛然此去差堪樂 훌쩍 여기에서 떠나게 되어 약간 즐거워할 만 하니,

好拜雙親對阿文 반갑게 부모님께 절을 하고 아문을 마주하리.


[2]

位極元台壽八旬 지위는 영의정에 이르고 나이는 여든 줄이지만,

暮途凄切老僧身 만년은 처절한 것 늙다리 중과 같네.

他年墓石無多字 죽은 뒤에 빗돌에다 많은 글자 쓰지 말고,

大署奇窮不孝人 험한 팔자에 불효한 사람이라 크게 써라.


[3]

休言壽得七旬餘 나이 칠십 넘었다고 말하지 말라.

死與三殤泯沒如 죽으면 요절해서 죽는 것과 같으리라.

縱丐螟蛉期續後 비록 양자 들여 후사 이음 기대했지만,

冲齡那可付詩書 어린 나이에 어찌 시서 맡길 수 있으랴.

이의현(李宜顯), <絶筆 乙丑>




[평설]

속절없이 늙어서 변변찮은 이름도 얻지 못함은 부끄럽지만 그래도 세상 떠나서 부모님과 요절한 아이를 다시 보게 되는 것이 위로가 된다. 그의 나이 35세에는 부친상을 당하고 49세에는 모친상을 당하였다. 47세 늦은 나이에 얻은 아들 이보문은 26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 그는 아들의 묘지(墓誌)와 묘표(墓表)를 직접 썼다. 지위는 영의정에 이르렀고 나이는 77세를 살았지만 늘그막은 늙은 중과 다름이 없다. 나중에 빗돌에 번거롭게 이것저것 적지말고 험한 팔자에 불효한 사람이라고 적어달라고 했다. 장수를 누렸다 해도 요절이나 별반 차이 없는게 인생이다. 학조(學祚)를 양자로 들여서 후사를 잇게 했지만 아직 어린애이니 여러모로 마뜩치 않다. 이의현은 직접 초고를 정리하여 학조(學祚)에게 전했다.

명예로운 삶을 살았지만 그에게는 불행한 가족사가 있었다. 그는 세 명의 아내를 두었다. 첫 번째 부인 어씨와 17년 만에 사별하고, 둘 사이에 있던 2남 2녀는 모두 요절했다. 두 번째 부인 송씨는 이보문을 낳았지만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다. 세 번째 부인 유씨와 결혼해 딸 4명을 낳았지만 2명이 요절했다. 3명의 부인과 결혼해서 3남 9녀를 낳았지만 모두 세상을 떠나고 끝내 딸만 셋이 남았다. 두 번이나 상처(喪妻)를 하고 여러 번 참척(慘慽)의 아픔을 격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부모님과 5년 전에 세상에 뜬 아들과 만날 것을 기대한 것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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