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명시(絶命詩)-
구차히 살지 않으리라
[1]
今焉已矣我平生 이제 모두 끝났도다 나의 평생이여
君辱臣生豈曰生 임금은 치욕 당했는데 신하는 살았으니 어찌 살아있다 하랴.
當與國家同休戚 마땅히 나라와 화복 함께 해야 하니
不爲夷狄苟求生 오랑캐가 되어 구차히 사는 것을 구하지 않으리.
西山濯濯薇何在 벌거벗은 서산에는 고사리가 어디에 있겠는가.
東海滔滔月欲生 넘실대는 동해에는 달 뜨려 하는구나.
將死學純長一嘆 장차 죽는 난 길게 한번 탄식 하니,
可憐六十八年生 예순 여덟 해의 인생이 가련하도다.
[2]
老入狴犴不死何 늙어서 감옥에 들어와 죽지 않으면 무엇하고
强爲俘虜苟生何 억지로 포로 되어 구차하게 살면 무엇하리
一生一死非難事 한번 살고 한번 죽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나,
北望吾君可奈何 북쪽으로 임금 바라보니 어이 할거나.
이학순(李學純), 「絶命詩」
[평설]
이학순(李學純, 1843~1910)은 본관은 전주이고 자는 경실(敬實)이며 호는 회천(晦泉)이다. 1910년 일제가 이학순을 회유하기 위해 은사금(恩賜金)을 보내자 거절하였다. 이에 투옥되어서도 단식 투쟁을 감행한다. 이학순이 연로한데다 병이 심하여 잠시 풀어주었는데, 풀어준 그날 밤에 독약을 마시고 자결하였다. 아들 이내수(李來修)는 아버지의 순국을 보고 독립운동의 길로 나섰다.
나라는 빼앗기고 임금은 욕을 당했다. 신하는 나라의 존망과 함께 해야 하는 법이다. 망한 나라에 흥한 신하는 없다. 나라가 망하면 당연히 신하도 설 땅이 없게 된다. 5∼6구는 서산(西山)에서 굶어 죽은 백이(伯夷)와 동해(東海)에 빠져 죽은 노중련(魯仲連)을 말하며 순절(殉節)에 대한 자신의 다짐을 재확인한다. 두 번째 시에서는 임금을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나는 신하의 무거운 마음이 담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