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마지막 한시 28

-절명시(絶命詩)-

by 박동욱

하늘에 부끄럽지 않으려 했네


草草人間世 덧없는 인간 세상에서

居然八十年 어느덧 팔십 년이 흘러버렸네.

生平何所事 평생토록 했던 일 무엇이던가.

要不愧皇天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자 했을 뿐이네.

이현일(李玄逸, 1627∼1704),「병중(病中)에 회포를 적다. 갑신년 8월에 짓다[病中書懷 甲申八月]」



[평설]

이현일은 율곡 성리설을 비판한 퇴계학파의 선봉이었다. 어려서부터 제갈공명을 사모해서 「出師表」의 구절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이 시는 그의 나이 78세 갑신년(1704) 8월에 지은 것이다. 그의 연보를 보면 7월 23일부터 병이 깊어졌다고 나온다. 그 뒤에 이런 기록이 덧붙여져 있다. “이즈음에 오랜 병에도 불구하고 반성하는 공부를 그만 두지 않았다. 문안하러 오는 사람이 있을 때면 부축을 받고 앉아서 은근한 뜻을 나누었다. 혹 서울에서 오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임금의 안부와 국가와 백성의 근심거리를 물었으니, 언제나 시속(時俗)을 슬퍼하는 간절한 뜻이 있었다.[至是久病沈綿, 猶不廢觀省之工. 有候問者, 輒扶坐以致其殷勤. 或有從日邊來者, 則必問上體安否及國憂民隱, 惓惓有傷時愍俗之意]” 이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마음공부는 평소 그래도 유지 했고 사람들에게 정성껏 대했으며 나라와 백성 걱정을 했다. 아픈 와중에도 세상에 대한 도리는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그의 깊은 인격을 알 수 있는 일화다. 8월 4일에 이미 병석에 누워 있은 지 오래 되었는데 갑자기 일어나 이 절명시를 쓰고 10월 3일에 세상을 떠났다. 훌쩍 팔십 년 세월이 흘렀다. 평생토록 거창한 것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하늘에 부끄러운 일만은 하지 말자고 했는데 그 다짐은 이루어진 것 같다고 했다. 죽는 순간에 하늘에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 인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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