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마지막 한시 30

-절명시(絶命詩)-

by 박동욱

나 이제 돌아가네


[1]

나이가 쉰 한 살

영광 욕됨, 슬픔 기쁨에 머리 이미 세어졌네.

태허(太虛) 향해 자연으로 돌아가

태평한 세상에서 내 몸을 마치려네.

行年五十一秋春 榮辱悲歡髮已銀

好向太虛歸造化 昇平今世了吾身


[2]

상여가 고향 앞으로 멍에 메고 향하게 되면,

붉은 명정 적벽강의 배에 드날리게 되리.

덩굴 얽힌 푸른 산에 길지(吉地) 남아 있으니,

선친의 무덤 아래에 남은 터 있네.

靈輀駕向故山前 丹旐悠揚赤壁船

蘿薜靑山留吉地 先人足下有餘阡


[3]

유령이 삽 맨 사람 따르게 해서 곧바로 묻게 했으니,

달사는 몸뚱이를 오히려 이렇게 하였네.

하필 내 빈소의 등불 아래서

세 차례 고복하여 꼭 예법대로 하겠는가.

劉伶隨鍤便埋之 達士形骸尙爾爲

何必吾楹燈燭下 三呼臯復正如儀

조영순(趙榮順), <절필. 10월 13일 유시에 공주의 객관에서 임종할 때에 직접 썼다[絶筆 [十月十三日酉時 在公州客舘 臨終親書]]>




조영순(趙榮順, 1725∼1775)은 비운의 인물이었다. 그의 집안은 3대에 걸쳐 네 명이 유배를 갈 만큼 정치적 풍파를 많이 겪었다. 절명시는 자만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작시의 비율이 적은데, 가상의 죽음과 현실의 죽음이라는 차이에 기인한다. 그나마 자결을 하는 경우에는 마음을 다잡아 자신의 결의를 실행하기 위한 목적이기에 연작시가 간간히 눈에 띈다. 하지만, 병을 앓고 있는 경우라면 연작시의 비율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위의 시도 연작시이긴 하나 이틀에 걸쳐 시를 짓고, 그것도 본인이 쓸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쇠약해 조카나 아들에게 받아쓰게 한 것이다. [1] 굴곡이 있던 인생사를 정리하면서 시사여귀(視死如歸)의 태도를 보여준다. 담담하게 죽음이란 낯선 현실을 받아들인다. [2][3]부터는 처음 시를 쓸 때보다 상태가 더욱 나빠진 탓에 직접 쓰지 못하고 조카와 아들에게 부탁했다. [2] 객사(客死)를 하는 아쉬움을 선산에 묻히는 기대로 대신했다. [3] 유령(劉伶)은 삽을 맨 사람을 항상 따라다니게 하다가, 자신이 혹 죽게 되면 바로 그 자리에 묻어달라고 했다. 객지(客地)에서의 죽음에 마음 쓰지 말고 평소 살던 자신의 집과 다를 바 없이 여기며 고복(皐復)의 예를 갖추면 그 뿐이라 했다. 두 편 다 객사(客死)하는 아쉬움을 달랜 셈이다. 그는 이 시를 쓴 다음날인 1775년 10월 14일 공주에서 객사하고 장단(長湍) 동파(東坡)에 있는 선영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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