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를 증오하며 10 -첩(妾)-

한시로 보는 일상의 재발견 –자음과 모음 근간-

by 박동욱

첩(妾)


지금의 일부일처제(一夫一妻制)에서 첩은 결코 용인 받을 수 없다. 그래서 첩이라 하면 ‘세컨드’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조선시대의 첩은 이와는 사뭇 달랐다. 첩(妾)은 처(妻)와는 별도로 가족의 지위가 인정된 여자였다. 조선 시대 남성들이 첩을 들인 이유는 제각각이다. 양반 남성들이 후사를 잇기 위해서, 집을 떠나 외지에서 장기 체류할 때 시중을 받기 위해서, 부인이 죽은 뒤 더 이상 후사를 둘 필요는 없고 오로지 시중 받을 목적으로, 여자를 만나던 중 생긴 자식을 거두기 위해서, 자신의 의지로 혹은 부인의 권유로 첩을 들였다.




애정이 늘그막에 심하여져서

아름다운 여인을 맞이해왔네.

흰 털을 뽑는 건 흰머리 싫어해서고,

화장하는 건 예쁜 뺨 사랑해서네.

구름 속에 난새와 학이 짝지어 있고

눈 속에 버드나무 옆 매화가 있네.

늙수레한 말이 꼴과 콩을 탐하면,

당연스레 질병의 빌미되리라.

風情衰境甚 迎得美姬來

鑷白嫌銀鬂 鉛紅愛玉腮

雲間鸞伴鶴 雪裏柳傍梅

老馬探蒭豆 應爲疾病媒

_임광택(林光澤), 「이웃 친구가 소실을 들였다는 말을 듣고 장난삼아 이 시를 지어준다[聞隣友納小室, 戱贈]」


친구가 첩을 얻을 때 축하의 의미로 지어주는 시가 적잖게 남아 있다. 첩에 대한 시에는 이 시처럼 희(戱)라는 표제가 붙어 있어서, 그들의 첩에 대한 태도를 짐작케 한다. 늦바람이 들어 첩을 들여온 친구에게 이 시를 써주었다. 늙은 친구와 젊은 첩에 대해 백(白)과 홍(紅)이란 단어를 써서 색채적으로 대비하였다. 시샘과 농을 담아 전반적으로 유쾌한 어조로 진행했다. 서로 좋은 짝이 될 것이라는 축수와 함께, 건강을 잃을 수도 있는 호색(好色)에 대한 경계도 말하였다.





비록 사마상여의 앓던 병과 똑같지만,

백거이의 나이에는 미치지 못하였네.

머리가 흰 뒤에도 은애(恩愛)는 줄지 않아

춘정(春情)은 오히려 버들가지 가에 있도다.

마당에서 제나라 사람의 첩이 우는 일 면할 수 있겠고

왕돈처럼 첩을 보냈으니 불조선(佛祖禪)을 참구함에 지장이 없으리라.

끊어진 줄을 다시 이어야 하리니,

눈앞의 어린 딸이 다만 그저 불쌍하네.

雖同司馬相如病 不及香山居士年

恩愛未衰頭白後 春心尙在柳枝邊

中庭免使齊人泣 開閤非關佛祖禪

擬把斷絃還得續 眼前稚女只堪憐

신광한(申光漢) 「집이 가난해서 첩을 내보내면서 장난삼아 쓴다[家貧, 遣妾, 戲書]」

신광한은 매우 가난했다. 1524년 41살에 여주 원형리(元亨里)로 내려가자마자 형편이 좋지 않아 첩을 돌려보낼 지경에 이르렀는데, 이 시는 그 즈음에 지은 것이다. 3,4구를 보면 상황이 여의치는 않았지만 첩에 대한 사랑만은 변치 않았던 것을 알 수 있다. 5∼6구는 설명이 필요한 대목이다. 5구에서 제인(齊人)은 『맹자』「이루」에 나오는 ‘제나라 사람의 일처일첩’(齊人有一妻一妾) 대목을 가리킨다. 풀이해보면 신광한은 만약 첩이 있다면 제나라 사람의 첩처럼 자신을 비방하며 우는 일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제 첩이 없게 되었으니 아예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6구에서 개합(開閤)은 “뒷문을 열다” 또는 “뒤에 있는 누각(後樓)의 문을 열다”는 뜻인 ‘개후합’(開後閤)을 줄인 말인데, 이와 관련한 전고가 하나 있다. 동진의 장수이자 권신인 왕돈이 여색에 빠져 몸이 쇠약해지자 좌우에서 여색을 삼가하라고 충고하므로, 왕돈이 “그것이야 매우 쉬운 일이야.”라고 하며 뒷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수십 명의 첩을 몰아내며 각자 갈 곳으로 가라고 하자 세상 사람들이 탄복한 일을 가리킨다.『세설신어』「호상(豪爽)」에 나온다. 아마도 신광한은 참선을 했던 모양인데, 첩이 없으니 참선하기에 방해가 안 된다는 뜻이다. 첩과 남은 인생을 함께 하려 했지만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첩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함께 어미 품에 돌려보낼 아이에게 더 마음이 쓰인다고 했다. 이 아이는 신광한과 첩의 사이에서 낳은 딸로 보인다.




남쪽 하늘 나비 쌍쌍 잘도 갔다 돌아오니

한순간에 훨훨 날아 여러 산 건너오네.

만약에 거마에 싣고 가게 한다면,

꿈속에 챙기던 짐 보따리 고생스러우리.

南天蝴蝶好雙還 一瞬蘧蘧度萬山

若使載將車馬去 夢中行李亦間關

이서우(李瑞雨),「첩이 말하기를 “여러 번 꿈에 주인어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나 일찍이 사람과 말이 산 넘고 물 건너는 일이 있지 않았고 갑자기 집에 와 있게 되었으니 그것은 참으로 돌아갈 징조는 아닌가 봅니다”라고 하여서, 장난삼아 절구 한 편을 쓴다[妾言屢夢隨主還家 然未甞有人馬跋涉之事 而倐然在彼 其非眞還之兆云 戱成一絶]」


첩은 언제나 집으로 데려가주길 고대했다. 얼마나 간절히 바랐는지 매번 집에 함께 돌아갈 꿈을 꾸었다. 그런데 이상스럽게 꿈속에서도 가는 과정은 쏙 빠지고 그냥 집에 있는 장면만 떠오른다. 거기에 대한 답으로 시를 남겼는데 이것이 아주 걸작이다. 나비들은 쌍쌍이 돌아가는 것을 좋아해서 순식간에 함께 여러 산을 건너온다. 말이나 수레에다 짐을 싣고 간다면 꿈속에서라도 짐을 챙기는 것이 얼마나 번잡스럽고 고생스럽겠느냐 했다. “우리도 나비처럼 훨훨 날아 함께 돌아가자. 그러니 조금만 나를 믿고 참아다오.” 이것이 그가 첩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아니었을까.




십 년간 살림하랴 실컷 고생했으니,

애정은 아내와 첩 사이를 어찌 논할 것인가.

한밤중에 깜짝 놀라 불러도 묵묵부답,

눈물 젖어 난새를 차마 보기 어렵구나.

十年臼鼎備辛艱 情意寧論婦妾間

半夜驚魂招不得 不堪和淚對孤鸞

_정충신(鄭忠信), 「죽은 첩의 거울에 대해 쓴다[題亡妾鏡]」


첩은 지난 10년 동안 살림을 꾸리느라 고생했다. 첩을 사랑하는 마음은 아내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러니 그녀가 떠난 자리가 너무도 크기만 하다. 한밤중에 퍼뜩 잠에서 깨어 찾아보아도 그녀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첩이 썼던 거울만이 주인을 잃고 놓여있어서 보기만 해도 눈물이 줄줄 흐른다.

첩을 둔다는 것은 여간 복잡한 문제가 아니었다. 일단 처첩(妻妾) 갈등이 생길 수 있었다. 실제 갈등의 주범은 남자인데도 처첩들의 화해만을 요구하거나 부덕(婦德)이 부족한 소치로 몰고 나간다. 첩에게서 낳은 자식은 평생 서얼(庶孼)이란 꼬리표를 뗄 수 없다. 자신의 씨이지만 자신의 씨일 수 없는 대접을 받았다. 수많은 여인들이 첩이란 이름으로 살다 세상에서 사라졌다. 첩은 아내의 의무는 졌지만 아내의 권리는 거세된 존재였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남편 곁에 온전한 자리조차 없는 슬픈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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