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로 보는 일상의 재발견 –자음과 모음 근간-
세계적으로 이름난 면 요리는 대개 뜨겁게 먹는다. 냉면은 차가운 육수에 말아 먹는 독특한 면음식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3대 냉면으로는 평양냉면, 함흥냉면, 진주냉면을 들 수 있다. 이중에 평양냉면은 먹어보면 의외로 맛이 심심하다. 어느 냉면집에는 ‘크게 맛난 것은 반드시 담백하다(大味必淡)’라고 쓰여 있다고 한다. 사람이든 음식이든 진짜는 자극적이지 않고 담담하다. 냉면은 계절과 관계없이 언제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옛날에는 냉면을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툭 터진 높다란 집 너무도 좋았는데,
게다가 별미(別味) 맛 새로움에 놀랐다네.
자줏빛 육수는 노을빛처럼 어려 있고,
흰 면발은 눈꽃처럼 골고루 배어 있네.
젓가락 들자 입 안에서 향기가 감돌고
옷 껴입어야 할 듯 한기가 휘감았네.
이로부터 나그네 시름 풀릴 것이니
고향갈 꿈 자주 꿀 필요가 없으리라.
已喜高齋敞 還驚異味新
紫漿霞色映 玉粉雪花勻
入箸香生齒 添衣冷徹身
客愁從此破 歸夢不須頻
장유(張維, 1587~1638), 「자줏빛 육수 냉면[紫漿冷麪]」
대략 400년 전 기록으로 냉면에 대한 첫 번째 문헌 자료이다. 『규합총서(閨閤叢書)』를 비롯한 조선후기 문헌에 국수를 오미자 국에 말아 먹는다는 대목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자줏빛 육수는 오미자를 우려낸 국물로 통상 해석한다. 위에서 언급된 것이 지금 우리가 먹는 냉면하고 비교해서 얼마나 유사한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그때의 냉면도 차가운 국물에다 맛은 좋았다. 오죽하면 이 냉면 한 그릇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鄕愁)를 달래준다고 표현했을까.
황해도에 시월 들어 한 자 남짓 눈 쌓이면
겹휘장과 폭신한 담요로 손님을 잡아두곤
삿갓 모양 솥뚜껑에 노루고기 익어가고
냉면 뽑아 배추김치 곁들여 내놓겠지.
西關十月雪盈尺 複帳軟氍留欸客
笠樣溫銚鹿臠紅 拉條冷麪菘菹碧
정약용(丁若鏞), 「장난삼아 서흥 도호부사 임군 성운에게 주다[戲贈瑞興都護林君性運] ○ 그때 수안 군수와 함께 해주(海州)에 와서 고시관(考試官)을 하고 돌아갔다[時與遂安守同至州考省試回]」
다산이 젊은 시절 벗인 임성운(林性運)에게 준 시이다. 냉면을 먹는 정경을 그린 시로 매우 운치가 있다. 눈은 펑펑 내리고 방 안은 따스하다. 이런 날은 친구와 함께 맛난 음식을 먹기에 제격이다. 화로에 솥뚜껑을 올려놓고 고기를 구워 먹는 일을 난로회(煖爐會), 혹은 철립위(鐵笠圍)라 불렀다. 보통은 쇠고기나 노루고기를 먹었는데, 이 시에서는 노루고기에 냉면을 함께 먹고 있다. 고기에다 냉면을 곁들여 먹고 있으니 지금도 볼 수 있는 익숙한 풍경이다.
누가 메밀국수를 솜씨 있게 가늘게 뽑아내어,
후추와 잣, 소금, 매실 색색으로 얹었는가.
큰 사발에 담아 넣자 펑퍼짐하게 오므라드는데,
젓가락 잡고 보니 집는 대로 올라오네.
맛보니 뱃속까지 유달리 식욕 당겼는데,
오래 씹다 수염에 좀 묻는 들 무엇이 대수랴.
게다가 세밑에 찬 등불 아래 먹으니,
기이한 맛과 향기까지 갑절이나 더하누나
誰翻佛飥巧抽纖 椒栢塩梅色色兼
着入大椀盤縮緖 夾持雙箸動隨拈
試嘗便覺偏醒胃 長啜何嫌薄汚髥
况玆歲暮寒燈夜 異味奇香一倍添
오횡묵(吳宖默), 「관아 주방에서 냉면을 내왔기에 자리에 함께한 사람들과 품평을 하다[冷麵自官廚至與一座評品]」
오횡묵(吳宖默, 1834∼1906)은 자인(慈仁)에 부임한 1888년 9월부터 고성부사(固城府使)에서 체직된 1894년 8월까지 6년 동안 영남지역에서 수령으로 있었다. 그는 50년 이상 서울에 살았기 때문에 경상도의 음식이 영맞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관아 주방에서 냉면이 나오는 날에는 매우 기뻐하였다. 전반부에서는 냉면의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다. 냉면이 식욕이 돋우니 수염에 묻혀가며 먹는다고 한들 상관이 없다. 한 해는 저물어 가는데 추운 밤 등불 아래에서 냉면을 먹으니 평소 먹던 냉면보다도 한결 맛난 것 같다. 냉면은 객지에서의 관리 생활을 이렇게 위로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