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로 보는 일상의 재발견 –자음과 모음 근간-
젊어서 자식을 낳았을 때는 자식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도 서툴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손자가 태어나게 되면 그제야 예전에 자식에게 다 못했던 사랑을 손자에게 쏟게 된다. 그래서 부자간에 갈등은 있을지 몰라도, 조손(祖孫) 간에 갈등은 찾아보기 힘들다. 할아버지는 유년기를 보다 밝고 환한 색으로 기억하게 만들어 준다. 내 곁에 잠시 있었지만 언제나 남아 있는 따스한 숨결이다.
스무 명 손주들이 눈앞에 꽉 찼으니,
사랑하고 미워함에 어찌 편애하는 맘 있으랴
어여쁘다. 저 아이 봄새처럼 말 막 배울 때,
병든 할비 베개 옆에 두는 것 마땅하리.
二十諸孫自滿前 愛憎寧有我心偏
憐渠始學春禽語 合置阿翁病枕邊
김우급(金友伋),「장난삼아 외손녀에게 주다[戲贈外孫女]」
어느 손주 하나 가리지 않고 모두 다 예뻤다. 그러나 그 많던 손주 중에 유달리 정이 가는 외손녀가 있었다. 아이는 말을 막 배워서 마치 새처럼 지저귀었고, 할아버지는 병석에 누워 지냈다. 죽어가는 늙은 몸으로 살아있는 생명의 움틈을 보면서, 다시 삶의 희망을 되살려 본다. 손녀의 재잘댐 보다 좋은 약이 어디에 있을까?
[1]
어린 손자 겨우 막 걸음마 배워
나 끌고서 참외 밭에 들어가누나.
참외 보고 가져다 제 입 가리키니
먹고 싶은 맘이 너무 넘쳐서이네.
穉孫纔解步 引我入瓜田
指瓜引指口 食意已油然
[2]
잠자다 갑작스레 ‘엄마’ 찾지만
귀를 막고서 감히 듣지 않누나.
아침에 일어나 어린 계집종을 꾸짖어
“누가 이 말을 가르쳤누” 하였네.
睡中忽喚母 塞耳不敢聽
起朝詰童婢 有誰敎此聲
[3]
사람들은 모두다 손자 있지만
나 같은 이 생각하면 응당 없으리.
아비이면서 또한 어미가 되고
할아비면서 거기다 할머니 되네.
人皆孫子有 如我思應無
爲父亦爲母 作翁兼作姑
노긍(盧兢), 「어린 손자[穉孫]」
노긍은 불행한 삶을 살았던 비운의 인물로 알려져 있다. 1777년 사간 이현영(李顯永)이 상소를 올려 거벽(巨擘, 대리 시험자) 네 사람 중 한 사람으로 지목이 되어 그해 봄에 평안북도 위원(渭原)으로 유배를 갔다. 유배를 떠나기 석 달 전에 부인인 청주 한씨가 세상을 뜨고, 1786년에는 장남 노면경(盧勉敬)이, 또 면경의 부인인 고령 신씨가 그 뒤를 따랐다. 이 시는 이러한 아픔을 겪던 시기에 지어졌다.
방금 걸음마를 배워서 말도 못하는 손주 놈이 할아버지 손을 끌고 참외밭을 향한다. 그러고는 참외를 보고서 입에 넣는 시늉을 한다. 손자가 잠이 살포시 들면 잠결에 “엄마”하며 부른다. 그 소리를 차마 들을 수 없어 귀를 감싸니, 어미 잃은 손자가 안쓰러워서 견딜 수가 없어서였다. 다음날 아침이 되면 손자에게 엄마란 말을 가르쳤다고 애꿎은 계집종을 타박한다. 자신의 아내와 자식 내외가 모두 세상을 떠나 버렸다. 그 기막힌 상황을 자신은 손자에게 아비와 어미, 할아비와 할머니가 된다고 말했다. 노긍도 겪으면 안될 일을 너무 많이 겪어서인지 몇 년 뒤인 1790년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지난해엔 뒷밭에 놀러갔다가
넌 풀 섶에서 배를 주었더랬지.
수건으로 닦아서 내게 준 것을
나는 또 손자에게 주었더니라.
去年遊後圃 君得草間梨
手巾拭與我 我以與孫兒
이양연(李亮淵),「동산에서 감회가 있어서[園中有感]」
뒷동산에 삼대가 소풍을 간다. 아들은 냉큼 배를 따서 수건에 쓱쓱 닦아 아비에게 전해주었고, 아비는 배를 양보하며 다시 손자에게 전해주었다. 그러나 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풍경은 다시는 재현될 수 없는 슬픈 기억으로만 남게 되었다. 이 시를 쓸 때 아내와 둘째 아들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동산은 옛 동산 그대로 인데 아들이 세상이 떠나버리면서 전혀 다른 낯선 공간으로 변해 버렸다. 자신은 자식을 잃고 손자는 아비를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