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를 증오하며 19 -아이를 버리다-

한시로 보는 일상의 재발견 –자음과 모음 근간-

by 박동욱

아이를 버리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의 주인공 벤자민(브래드 피트)은 태어나자마자 강보에 싸인 채 아버지에게서 버림을 받았다. 이처럼 부모가 모두 세상을 떠난 고아(孤兒)도 불쌍하지만,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는 더욱 불쌍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도 둘로 나뉜다.『자휼전칙(字恤典則)』에서는 3세까지의 젖먹이를 유기아(遺棄兒)로, 4세부터 10세까지의 어린아이를 행걸아(行乞兒)로 구분하고 있다. 유민(流民)들이 유랑(流浪)의 과정에서 자식을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등에 업은 어린 자식을 주막에 버리거나, 길가에 내 버리기도 했다. 심지어는 옷자락을 잡고 매달리는 예닐곱 살 아이를 나무에 묶어 두고 떠나기도 하였다. 오죽하면 자식을 버릴까 싶지만,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는 세상에게 버림받은 것과 다름없었다.




아이가 둘이 함께 다니었는데

하나는 사내애 하나는 계집애

사내애는 말 배울 나이쯤 됐고,

계집애는 더벅머리 늘어뜨렸네.

어미 잃고 통곡하며

저 갈림길에 있었기에

붙들고서 물었더니

목이 메어 더듬더듬 말하였네.

“아빠는 진작 집 떠났고,

엄마는 짝 잃은 새 같았지요.

쌀독이 벌써 바닥나서

사흘 쫄쫄 굶고나자

엄마랑 저와 함께 울어서

두 뺨에는 눈물 콧물 범벅이었죠.

동생은 젖 달라고 울었지만

엄마 젖도 말라붙었지요

엄마가 내 손을 잡고서

젖먹이 동생과 함께

저기 있는 산마을에 가서

구걸하여 우리를 먹였어요.

물가 시장 데려가서는

엿도 사서 제게 먹이고는

고갯길에 데려와서는

사슴새끼처럼 동생 안자

동생 이미 곯아 떨어졌고

나도 죽은 듯 잠들었다가

깨고 나서 살펴보니

엄마가 거기 없었어요.”

말하다가 울어대니

눈물 콧물 범벅이네.

해가 져서 어두워지면

새들도 무리지어 깃들 곳 찾건만

떠도는 오누이는

찾아들 집이 없네

……하략……

有兒雙行 一角一羈

角者學語 羈者髫垂

失母而號 于彼叉岐

執而問故 嗚咽言遲

曰父旣流 母如羈雌

甁之旣罄 三日不炊

母與我泣 涕泗交頤

兒啼索乳 乳則枯萎

母携我手 及此乳兒

適彼山村 丐而飼之

携至水市 啖我以飴

携至道越 抱兒如麛

兒旣睡熟 我亦如尸

旣覺而視 母不在斯

且言且哭 涕泗漣洏

日暮天黑 栖鳥群蜚

二兒伶俜 無門可闚

정약용(丁若鏞), 「가엾은 오누이. 흉년을 걱정한 시이다. 남편은 아내를 버리고, 엄마는 자식을 버렸다. 7세 계집애가 자기 동생을 데리고 길거리를 방황하면서 엄마를 잃어버렸다고 엉엉 울고 있었다.[有兒 閔荒也 夫棄其妻 母棄其子 有七歲女子 携其弟彷徨街路 哭其失母焉]


자식을 버리는 일은 어느 시절이나 있었다. 이규보의「길에 버린 아이[路上棄兒]」에서 “금년에 흉년 들어 굶주린다 하더라도, 어린 자식 먹어봐야 몇 술이나 먹겠는가. 하루아침에 모자 사이 원수가 되었으니 각박한 세상인심 이제야 알 만하네[若曰今年稍歉飢, 提孩能喫幾多匙. 母兒一旦成讐敵, 世薄民漓已可知]”라 했고, 남효온의 「늙은이가 손자를 버린 노래[老夫棄兒孫行]」에서 …금년 가뭄 천리 땅 불태워서는 닭과 개까지 재앙 미치었더니, 궁한 노인 골수조차 말라버려서 손자 있어도 함께 살 수 없네. 으슥한 골목에다 내버려두어, 제 마음껏 떠 돌도록 하네…[今年赤千里, 禍及鷄狗愁. 窮老骨髓乾, 有孫不得留. 棄置窮巷中, 聽汝任浮遊]라 하였다.

위의 시는 다산 정약용이 강진 부근의 백성들이 겪은 고충을 보고한「전가기사(田間紀事)」6편 가운데 여섯 번째 작품이다. 7살 여자애가 그보다 훨씬 어린 남동생과 갈림길에서 얼이 빠져 울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 아빠는 진작 떠나버리고 엄마는 홀로 아이를 키웠다. 상황은 악화되어 끼니는 끊겨 사흘이나 굶을 지경이 되었다. 나오는 것은 눈물이었지만 나오지 않는 것은 엄마의 젖이었다. 엄마는 무언가 결심을 한다. 아마도 자신이 데리고 있다가는 아이와 다함께 죽겠다 싶었을 것이다. 아이들만 남겨두면 측은한 마음에 도와주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으리라. 최후의 만찬처럼 엄마는 아이에게 구걸한 음식을 먹이고 엿도 사주었다. 아이들을 사슴새끼처럼 품고 자신의 품에서 마지막으로 재웠다. 아이들이 깨워보니 엄마는 떠나고 없었다. 극빈(極貧)은 이렇게 부모 자식의 사이마저 끊어버렸다. 이 시를 읽고서 모성의 상실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모성마저 포기하게 만든 현실의 잔인함에 주목해야 한다.


자휼전칙.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모기를 증오하며 18 -얼음을 캐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