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로 보는 일상의 재발견 –자음과 모음 근간-
거지는 남에게 금품이나 음식을 빌어먹고 사는 사람을 이른다. 비렁뱅이·걸인(乞人)·동냥치·걸뱅이 등으로도 부른다. 거지를 다룬 전(傳)도 있었는데, 허균(許筠, 1569∼1618)의「장생전(蔣生傳)」과 성대중(成大中, 1732∼1809)의「개수전(丐帥傳)」, 이용휴(李用休, 1708∼1782)의「해서개자(海西丐者)」등이다. 연암 박지원도「사약행(司鑰行)」이란 장편 칠언고시를 남겼는데 조선후기 영조 때 액정서(掖庭署)의 사약(司鑰) 벼슬을 지냈던 어느 거지의 일생을 노래하고 있다. 그 옛날 거지들은 어떠한 모습이었을까?
복숭아꽃 활짝 폈고 새들은 우짖는데,
수곽에 해가 질 때 밥 짓는 연기 나네.
온종일 빈 표주막 오직 손에 있었는데
말없이 문 보면서 남몰래 울음 삼켰네.
桃花灼灼鳥嚶嚶 水郭斜陽煙火生
盡日空瓢惟在手 望門無語暗呑聲
권구(權榘),「귀촌의 길 위에서 떠돌이 거지가 시골집 문 밖에서 방황하고 있었으니, 그 모습이 가련하게 여길 만하였다 [신축년에 짓다][龜村路上 見流丐彷徨村家門外 其狀可憐 辛丑]
꽃이 피고 새들이 우는 봄날의 따사로운 정경이다. 해질녘이 되자 집집마다 밥을 짓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예사로운 일상은 지루한 듯 보인다. 그 일상이 깨지면 그것이 행복이라는 걸 그제야 깨닫게 된다. 이런 풍경에 소외된 떠돌이 거지가 있었다. 누구하나 도와주지 않아 음식이 담겨 있어야 할 그릇은 텅 비어 있다. 하루 종일 수많은 거절에 체념했는지, 어떤 문 앞에서 차마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소리를 삼켜가며 눈물만 흘린다.
터진 전대와 누더기 옷으로 문턱에 서 있는데,
온통 검은 얼굴에다 입으로 말이 없네.
만 권이나 읽었던들 어디에다 쓰겠는가.
백성을 배부르고 따뜻하게 하지도 못하는데.
破橐鶉衣立巷門 滿顔黎黑口無言
讀書萬卷知何用 未使斯民躋飽溫
김만영(金萬英), 「기해년에 크게 흉년이 들어서 빌어먹는 백성이 길에 꽉 찼으니 느낀 바가 있어서 짓다[己亥大饑 丐民盈路 感而有作]
기근이 들어 길바닥에 거지들이 가득했다. 형편없는 몰골들로 말할 힘도 없는지 한결같이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때 이 시를 쓴 김만영은 36살의 젊은 나이였다. 숱한 책을 읽었지만 눈앞에 있는 참담한 현실도 당장 개선시킬 수 없었다. 기근은 이렇게 끝나지 않았다. 후에 한번에 100만 명 이상 굶어죽었던 ‘경신대기근’(1670~71년)과 ‘을병대기근’(1695~96년)이 두 번이나 기다리고 있었다.
뉘 집 딸 이집 저집 걸식을 하고 있나
물어도 답도 않고 다만 그저 훌쩍이네.
얼굴은 시커멓고 머리털 헝클어져
대낮에 나찰귀라도 출현한 것 같았네.
쓸쓸한 맨손에는 표주박도 없었으니,
하루 종일 얻은 것은 얼마나 되겠는가.
저 깊은 규방에서 어여쁠 때 생각해보면
어찌 영락하여 썩은 풀 따를 줄 알았겠나.
가련타 삼년동안 크게 흉년 들었으니,
백성들 절반이나 떠도느라 고생했네.
이 늙은이 이런 일에 가슴이 메여오니
어데서 한 잔 술로 답답한 속 적시리오.
원컨대 정협이 그려놓은 유민도에다
이 여인도 같이 그려 임금께 바치리오.
沿門乞食誰家女 問之不應但長唏
面貌黧黑髮髼鬆 白晝現出羅刹鬼
伶俜赤手瓢也無 終日所得能復幾
想渠深閨婉㜻時 豈知零落隨腐卉
可憐三歲大無年 蒼生太半困瑣尾
老夫對此氣塡胷 安得一杯澆礧磈
願將鄭俠流民圖 添畫此女貢丹扆
김이만(金履萬),「여자 거지를 슬퍼하다[哀乞丐女]」
이 시는 여자 거지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노인, 어린애, 여자 등 사회적 약자들의 피해가 더 클 수밖에 없다. 거지의 모습은 대개 비슷하다. 초라한 행색에 말도 못할 만큼 넋이 빠져 있고 눈물만 흘린다. 이 시에서도 마찬가지인데 흡사 나찰의 모습 같다고 했다. 나찰은 악귀(惡鬼)로 사람의 피와 살을 먹는다고 한다. 이 여자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귀염을 독차지했던 예쁜 딸이었으리라. 그러나 비극이 이 여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더 슬픈 사연을 간직한 사람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있었다. 시인은 답답한 현실을 술로 잠시 달려보려 한다. 여기에 나오는 정협(鄭俠)의 〈유민도(流民圖)〉는 유래가 있는 말이다. 송(宋) 나라 때 왕안석(王安石)이 신법(新法)을 시행하여 백성들에게 폐해가 심했다. 정협이 왕안석에게 여러 번 말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그 후 정협은 유민들의 처참한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상소와 그림을 신종 황제(神宗皇帝)에게 바쳤다. 신종은 이 그림을 보고 깊이 깨달아 그다음 날 신법을 혁파하고 빈민을 구제하니 큰비가 내렸다고 한다.
요즘에는 거지라는 말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그 대신 노숙인(露宿人) 또는 노숙자(露宿者)나 홈리스(homeless)로 불린다. 또 부랑자(浮浪者) 또는 행려병자 (行旅病者)라고 하는데, 행려병자는 노숙 행위 자체를 질병으로 경멸하는 시각이 담긴 말이다. 이들에 대한 시선은 대개 동정과 혐오 두 가지의 양극단으로 나누어진다. 지금 우리들 주변에도 얼마나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있으며,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