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로 보는 일상의 재발견 –자음과 모음 근간-
‘제야(除夜)’는 섣달그믐을 가리키는 데 다른 말로는 ‘제석(除夕)’, ‘제일(除日)’, ‘수세(守歲)’라고 불렀다. 이날에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고 하여 함께 모여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지새우며 새해를 맞이했다. 이것은 도교의 수경신(守庚申)이라는 풍속과 관련이 있다. 근래에는 종로에 있는 보신각종을 33번 치는 제야의 종소리 행사가 열린다.
외론 촛불 추운 집에 새벽까지 앉아서는
남은 해 보내자니 은근히 서운하네.
강남 땅서 나그네 신세로 지낼 때에
저물녘 정자에서 고운 임 보내는 듯.
寒齋孤燭坐侵晨 餞罷殘年暗損神
恰似江南爲客日 夕陽亭畔送佳人
-손필대(孫必大, 1559-?), 「섣달 그믐날(守歲)」
친구들을 만나서 망년(忘年)의 모임을 가지며 왁자지껄 보낼 때도 있었다. 그러나 올해는 혼자서 조용히 지내려 한다. 촛불 한 자루를 친구 삼아 그렇게 새벽까지 앉아 있었다. 올해를 보내는 심정이 꼭 타국에서 저물녘에 애인과 헤어지는 것만 같다.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하니 후련하면서 왠지 미련이 남는다. 지난해는 다시 돌이킬 수 없고 다시 돌아올 수 없다. 그래서 애틋하지만 그래서 시원하다. 아팠던 기억은 이제 끝나서 좋고, 즐거웠던 기억은 추억으로 계속돼서 좋다.
작년에도 여전히 그런 사람
올해에도 여전히 그런 사람.
내일이면 새해가 시작되나니,
해마다 같은 사람 되지 말기를.
去年猶是人 今年猶是人
明年是明日 莫作每年身
-이식(李植,1584-1647), 「제야(除夜)」
부끄러운 건 어제 그렇게 살았던 것이 아니고 오늘도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작년에 그렇게 살았다고 올해도 그렇게 살 수는 없다. 살아왔던 것처럼 그렇게 살아간다면 이제는 살아간다는 게 살아 있지 않은 것과 무엇이 다른가? 오늘과 내일이 다른 사람, 올해와 내년이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 타성과 반복이 아니라 갱신과 탄생을 꿈꾼다. 나는 매년 다시 태어나겠다고 다짐해 본다.
묵은해는 지금 이제 어디로 가버렸나.
이쯤에서 새해를 기약해야 하겠네
세월이 빠른 건 나와는 무관하지만
흰 머리털 생기는 게 최고로 얄밉구나.
舊歲今從何處去 新年似向此中期
流光袞袞非關我 最是生憎入鬢髭
이산해(李山海), 「섣달 그믐날(守歲)」
곧 지난해가 될 올해에 한 일을 생각해보니 별반 떠오르는 게 없다. 그렇게 허망하게 한 해가 가버렸다. 새해는 또 다른 해와 마찬가지겠지만 다시금 기대해본다. 해놓은 것도 없이 나이만 속절없이 먹었다. 빠른 세월은 흰머리로 경고등을 켠다. 지난해는 이렇게 세월의 흔적만을 머리에 남겨놓고 아쉽게 사라진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은 새해에 대해 설렘보다 지난해에 대해 아쉬움이 컸다. 지난해는 늘 반성의 대상이었다. 윤기(尹愭, 1741~1826)는 「설날 새벽[元曉 乙巳]」에서 “사랑하는 임과 작별하여 떠나가는 듯 여울의 빠른 물살 보는 듯하네[似送情人別, 如觀逝水遄]”라 했다. 섣달그믐에 세월의 빠른 흐름을 탄식했고 늙음에 대한 아쉬움을 말했으며 지난 세월을 반성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에 우리는 인생의 마지막 날에 미리 서본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