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로 보는 일상의 재발견 –자음과 모음 근간-
동짓날이면 관상감(觀象監)에서 새해 책력(冊曆)을 제작했다. 새해가 되어 왕이 신하들에게 달력을 나누어 주면, 신하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달력을 선물로 보내곤 했다. 책력은 지금의 달력과 유사한데 농사나 택일 등에 필요한 내용 등이 두루 기록되어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새 달력을 보는 것은 한 해가 지났다는 아쉬움과 새로운 한 해가 다가온다는 설렘으로 복잡하기 마련이다. 그들은 달력에 무엇을 적고 있을까?
나이가 마흔 돼도 이미 많다 말하는데
오늘 한 살 더 먹으니 또 마음 어떻겠나.
이제부터 우물대다 쉰 되게 생겼으니
가련타 거센 물살 머물게 할 계책 없음이
行年四十已云多 加一今朝又若何
從此逡巡爲半百 可憐無計駐頹波
이정형(李廷馨),「기축년 새 달력에 쓰다[題己丑新曆]」
이 시는 41살의 나이에 썼다. 갓 마흔이 되었을 때도 적지 않은 나이라 생각했는데, 41살이 되니 이제 정말 마흔 줄에 접어 들었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이런 속도로 나이를 먹어가다가는 쉰 살도 금세 될 것 같다. 세월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없고 작년과 다르게 새롭게 살아보겠다는 굳은 다짐을 한다. 그는 최소한 34세 때부터 해마다 책력에다 시를 썼다. 그의 문집에는 이런 시가 11수가 남아 있다.
1606년 동지 무렵 「정미년 새 달력에 쓰다[題丁未新曆]」라는 시를 남겼다. 그가 달력에 남긴 마지막 시였다. “눈 어둡고 귀는 먹어 흰 머리 희끗희끗, 쉰에도 늙었는데 하물며 예순이랴. 혈기가 쇠했으면 물욕을 경계하라는 공자 유훈 다시금 띠에다 적어보네(眼暗耳聾白髮新 五旬已老况六旬 血氣旣衰戒之得 聖師遺訓更書紳)”『논어』에는 군자가 경계할 세 가지를 들고 있다. 특히 노년에 혈기가 쇠약해지므로 탐욕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이때 예순을 목전에 둔 나이였다. 이 시를 쓴 이듬해에 그는 세상을 떠났다. 그는 중년 때나 노년 때나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해 깊이 자각하고 반성했다.
치아가 쏙 빠지고 머리털도 벗어지고
세상 나와 어느새 오십이 넘었도다.
모르겠네. 내년 일년 삼백 육십일 동안에
이 몸의 길흉이 또 어찌 될는지를
齒牙零落鬢毛踈 生世居然五十餘
不識明年三百日 此身休咎又何如
신흠(申欽), 「새 달력 뒤에다 쓰다[書新曆後]」
용모의 변화는 나이 듦의 가장 확실한 증후이다. 쉰 살은 초로(初老)의 나이여서 변화를 실감하게 된다. 인간은 노년으로 인해 절반쯤 평등해지고, 죽음으로 인해 완벽히 평등해진다. 내년에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예상할 수도 없고 예상대로 진행되지도 않는 삶에서 반성과 다짐 대신 걱정에 몸을 슬쩍 기댔다. 나이가 들수록 삶은 알 수 없는 것 투성이다. 또 한 해가 무탈하게 지나가길 언외(言外)에 담았다.
날씨도 사람 일도 종잡을 수 없어서는
앓고 난 뒤 새 달력을 어이 차마 보겠는가.
모르겠네 올 한 해에 많고 많은 날들 속에
비바람 몇 번 치고 기쁨 슬픔 몇 번일까.
天時人事太無端 新曆那堪病後看
不識今年三百日 幾番風雨幾悲歡
-강극성(姜克誠, 1526-1576), 「새 달력에 쓰다(題新曆)」
날씨나 사람의 일이나 예측하기 쉽지 않다. 큰 병을 앓고 있을 때는 다음 해도 기약하기 어려웠다. 겨우 몸을 추스르게 되어 새 달력을 다시 받고 보니 생각이 여간 복잡하지 않다. 앞으로 다가올 한 해에는 어떤 날씨들이 있을 것이고 어떤 감정 속에서 살아가게 될까? 알 수 없어서 설레기도 하지만 몰라서 불안하기도 했다. 나는 올해를 또 어떻게 살아내어야 할까.
새 달력을 받게 되면 나이를 한번 따져보고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그러면서 지난해에 대한 반성과 다가올 해에 대한 다짐을 한다. 대개는 이번 해도 지난해의 재탕에 불과할 뿐이다. 그래도 새 달력을 마주하면 설렘과 다짐이 먼저 든다. 예전처럼 살지 않으리라 새롭게 마음을 다잡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