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로 보는 일상의 재발견 –자음과 모음 근간-
낮잠
공자는 제자 재여(宰予)가 낮잠을 자자 썩은 나무는 아로새길 수 없다고 강하게 책망한 적이 있었다. 이 이야기는『논어(論語)』「공야장(公冶長)」에 나온다. 정말 낮잠이 그렇게 나쁜 것일까? 미국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30분의 낮잠이 밤의 3시간과 같은 가치를 지닌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는 점심 식사 후 30분의 낮잠을 챙겨서 꼭 잤던 덕분에, 매일 3시간씩 더 일할 수 있었던 셈이다. 처칠이나 피카소도 낮잠을 즐겼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앞 산 내리던 비가 막 개자마자
누각에 푸른 기운 스미는구나.
숨은 사람 맑은 대낮 자는 동안에
살구꽃이 가끔씩 저절로 졌네.
前山雨纔歇 蒼翠映小閣
幽人眠淸晝 杏花時自落
-박준원(朴準源, 1739-1807),「낮잠(午睡)」
비가 개이자 숲의 푸른빛이 더 짙어져 누각까지 스미는 것만 같다. 이때야말로 낮잠을 청하기에 가장 좋을 때다. 잠에 들자 살구꽃이 한 잎 두 잎 땅으로 살포시 떨어진다. 나 없어도 세상은 이렇게 흘러가겠지.
발 그림자 방 깊숙이 드리워가고
연꽃 향기가 솔솔 풍겨 오누나
홀로 자다 꿈에서 깨어나 보니
오동잎에 후드득 빗소리 나네.
簾影深深轉 荷香續續來
夢回孤枕上 桐葉雨聲催
-서거정(徐居正, 1420∼1488),「낮잠에서 깨어[睡起]」
얼마나 잠들었을까? 발 그림자는 방 안 깊이 옮겨져 있고, 연꽃은 어데서 피어 있는지 향기가 풍겨 나온다. 아직도 노곤하게 잠이 다 깨지 않았는데 빗줄기가 오동잎을 때려대니 그 소리가 요란하다. 꿈결에서 하나씩 의식이 돌아온다. 시각(視覺)에서 시작해서 후각(嗅覺)으로 옮겨갔다가 청각(聽覺)으로 마무리했다. 나는 아직 살아 있다.
책 읽지 않은 지가 이십 년 되었는데
사람들 똥똥한 배 비웃어도 내비뒀네.
지금 다시 아들놈을 게으르게 내버려두니
긴긴 날 서창 아래 주구 창창 낮잠 자네.
不讀書來二十年 從人笑我腹便便
如今更遣兒童懶 永日西窓事晝眠
이수광(李睟光), 「아들 녀석이 낮잠을 자기에 장난삼아 쓰다[豚兒晝寢戲書]」
20년을 허송세월 하다 보니 나온 것은 뱃살 밖에 없었다. 아들놈도 자신을 닮았는지 게을러 빠져서 틈만 나면 낮잠을 잔다. 아들을 견책하려고 쓴 시가 아니니, 심각하게 읽을 것은 없다. 무언가 치열하게 산다는 것도 또 다른 집착이 아니겠는가? 그러고 보면 새근새근 낮잠에 빠진 아이가 밉지만은 않다.
숲에 솟은 어린 죽순 푸르게 자라나고
유월의 맑은 바람 사방에 시원하네.
세상은 저 달팽이 뿔 다툼에 맡겨 두고
한낮에 북창에서 희황씨 꿈꾸었네.
抽林嫩籜綠初長 六月淸風四面涼
浮世任他蠻觸鬧 北窓晴晝夢羲皇
김수항(金壽恒), 「낮잠[晝眠]」
죽순은 자라나고 바람은 불어댄다. 천지자연의 조화를 보고 있으면 번잡스런 세상사는 자연스레 뒷전이 된다. 안달복달 살 필요가 없다.『장자』에 “달팽이의 왼쪽 뿔 위에 있는 나라를 촉씨(觸氏)라 하고, 달팽이의 오른쪽 뿔 위에 있는 나라를 만씨(蠻氏)라 한다. 때때로 서로 영토를 다투어 전쟁을 하는데, 쓰러진 시신이 수만 명이었다.”라 나오니, 사소한 일로 반목하며 크게 다투는 것을 말한다. 세상의 일도 이와 다를 바 없다. 희황씨(羲皇氏)는 태고 시대의 임금인 복희씨(伏羲氏)를 가리킨다. 이때에는 천하가 말할 수 없이 태평하였다고 한다. 낮잠에 빠져드니 꼭 복희씨 시대의 사람이 된 것만 같다. 낮잠을 청하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진다.
김춘수는 「낮잠[午睡]」에서 “청개구리/ 토란잎에서 졸고// 해오라기/ 깃털만치나/ 새하얀 여름 한낮// 고요는/ 수심(水深)보다/ 깊다.”라 하였다. 시간이 멈춘 듯한 한낮의 꿈을 잘 묘사하고 있다. 송(宋)나라 황정견(黃庭堅)은「6월 17일 낮잠에서 깨어[六月十七日晝寢]」에서 “말이 마른 삼태기 깨물어 먹는 소리에 낮잠에서 깨고보니, 꿈속에선 비바람 되어 파도가 강 물결 뒤집어댔지.[馬齧枯箕諠午枕, 夢成風雨浪翻江.]”라고 하였다. 꿈속에서는 비바람이 세찬 파도를 일으키던 소리였는데, 잠에서 깨고 보니 말이 여물을 얻어먹지도 못해 마른 삼태기를 먹던 소리였다.
낮잠은 그 자체로 한가하고 평화롭다. 그래서 낮잠은 바쁜 일상에 가지는 휴지(休止)이며 충전이다. 낮잠에서 깰 때의 몽환적인 분위기는 아침에 잠이 깰 때와 사뭇 다르다. 의식이 돌아오면서 낮인지 밤인지 모를 잠깐의 착각이 아직 살아있다는 자각으로 바뀐다. 복잡한 일들은 접어놓고서 낮잠에 잠시 몸을 기대면, 나머지 하루를 살아갈 힘이 생기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