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로 보는 일상의 재발견 –자음과 모음 근간-
단오 부채[端午扇]
단옷날에 선물로 주고받는 부채를 단오선(端午扇) 또는 절선(節扇)이라고 한다. 단오선에 대한 기록은 여러 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다.『동국세시기』를 보면 “공조에서는 단오선을 만들어 바친다. 그러면 임금은 그것을 각 궁에 속한 하인과 재상, 시종신에게 나누어준다.”라 나온다. 지금으로 치자면 대통령 하사품인 셈이다. 부채를 받은 사람은 거기다가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을 그리곤 했다.
성은이 성균관을 적시어서는
대궐에서 새 부채 하사하였네.
쌍쌍이 봉하고 쓴 제사(題詞)가 아직도 촉촉하고
부채질하니 오월에도 찬바람이네.
백우선(白羽扇) 가져 더위 잘 넘길 것이니
청단선(靑團扇)을 받은 일에 견줄 만하네.
서늘한 가을바람 불어온대도
상자 속에 넣고서 두고 보리라
聖恩霑璧水 新扇出金鑾
題處雙封濕 搖來五月寒
不勞携白羽 堪比賜靑團
縱使秋風至 還從篋裏看
윤기(尹愭),「단옷날 대궐에서 하사한 부채 두 자루[端午內賜二扇]」
이 시는 윤기가 50세 때인 1790년 단오에 지은 작품이다. 부채를 하사받은 감격이 문면에 가득하다. 자신이 부채를 하사 받은 일을 당(唐)나라 때 한림(翰林)으로 처음 선발된 사람들에게 단옷날이면 ‘푸른색의 둥근 부채[靑團扇]’를 하사했던 일에 빗대 자랑스러워했다. 가을이 되면 쓸모없어질 부채지만 상자 속에 소중히 간직하며, 자신을 특별히 생각하시던 임금의 마음을 기억하겠다고 했다.
지난날 오월 오일 단옷날에는
선방(扇房)에서 부채를 내리시었네.
궁궐에서 새로 만든 것이기에,
긴 여름 부채 덕에 시원했었지.
칠 광택은 만질수록 반질거렸고
붉은 인주 찍힌 단오첩 향기롭더니,
지금은 장독 기운 어린 곳에서
모기떼만 괴로이 침상에 드네.
舊日端陽日 恩頒自扇房
內家新制作 長夏故淸涼
漆澤摩來潤 紅泥帖子香
如今瘴厲地 蚊蚋苦侵床
정약용(丁若鏞),「단옷날에 슬픈 마음을 읊다[端午日述哀]」
이 시는 정약용이 장기에 유배 갔을 때 지은 것이다. 단순히 부채는 더위를 시키는 도구가 아니었다. 부채는 임금의 신하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었다. 부채 덕에 여름철 더위도 피했고 관직의 괴로움도 이겨냈다. 그러나 이번 단옷날에는 유배지에서 모기 밥이 되고 말았다. 성은(聖恩)이 떠난 자리에는 모기한테 물린 자국이 상처
처럼 자리 잡았다.
명절 맞아 향기로운 부채 주시고
푸짐한 음식에 담로의 술잔이니
내관 통해 하사한 것 받들어 보고
포장되어 온 것을 근신이 열었네.
절을 하고서 임금 은총 받으니
처세함에 작은 재주 부끄러운데
우리 임금 거의 아무 병 없으시고
단비가 바라던 중에 쏟아지도다
令節揚薰箑 需雲湛露杯
擎看內史降 封到近臣開
拜手承殊渥 將身愧瑣才
吾王庶無疾 好雨望中催
-신익전(申翊全),「기축년(1649, 인조27) 단오일에 승정원에서 숙직을 하다가 추로주와 부채를 하사받고서…[己丑端陽,直宿銀臺,獲拜秋露、扇面之賜,時聖候違豫而向康,且逢久旱之雨,欣抃有作,呈朴承宣 仲久 【長遠】 求和]」
단옷날이었다. 마침 승정원에서 숙직을 하고 있었는데 추로주와 부채를 하사받았다. 임금의 깊은 은총에 감읍이 되어 숙직의 피로도 잊을 만했다. 게다가 임금께선 병환에서 회복이 되었고 오래 가뭄에 시달렸는데 비까지 내리고 있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부채를 부치지 않아도 상쾌해지는 것만 같았다.
에어컨은 자신의 열기를 밖으로 품어대면서 안으로는 냉기를 전달한다. 그러나 부채는 자신의 손짓에 따라 주변까지 시원한 바람을 전달해준다. 부채는 친환경적이며 이타적인 물건이다. 그 옛날 마땅한 냉방기구가 없었을 때 혹서(酷暑)를 버티기에 부채만큼 요긴한 물건도 없었다. 임금이 신하들에게 부채를 전달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단오 무렵에 부채를 선물로 주고받는 것은 나쁜 기운[邪氣]를 물리치라는 의미를 가진다. 부채로 여름 한철을 잘 지내라는 격려의 의미도 있었겠지만, 백성들에게 시원한 바람 같은 선정(善政)을 베풀라는 당부가 섞인 것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