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로 보는 일상의 재발견 –자음과 모음 근간-
아이를 기다리며
공자가 말하기를, “부모가 살아 계시거든 멀리 가서 놀지 말며, 놀더라도 반드시 일정한 방소가 있어야 한다.〔父母在 不遠遊 遊必有方〕”라고 하였다.『論語』「里仁」에 나오는 말이다. 자식은 부모가 계실 때에 먼 길을 떠나지 말아야 하고, 부득이 하게 떠날 때에도 반드시 가는 곳을 알려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님의 걱정이 없게끔 해드리기 위해서다. 통신수단이 지금과 같지 않았던 예전에는 그야말로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자식을 기다리는 것만큼 간절한 일도 없다. 그들은 그 기다림을 어떻게 견뎌 냈을까?
새벽달 부질없이 그림자 끌고 가니
누런 국화 붉은 낙엽 정 담뿍 머금었네.
모래밭에 눈길가도 물어볼 사람 없어
정자의 기둥마다 돌아가며 기대었네.
曉月空將一影行 黃花赤葉政含情
雲沙目斷無人問 倚遍津樓八九楹
노수신(盧守愼, 1515~1590),「13일에 벽파정에 도착하여 사람을 기다리며[十三日到碧亭待人]」
노수신은 진도에 19년 동안이나 유배되었다. 이 시는 1565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때는 그가 서울을 떠나온 지 19년이나 지나 있었다. 여기 나오는 벽정(碧亭)은 벽파정(碧波亭)인데, 이곳에 대해서 3편의 시를 남겼다.
아마도 누군가가 찾아오기로 되어 있었던 것 같다. 가족일 것으로 추정된다. 새벽부터 잠이 깨어 정자를 향해 발을 옮긴다. 그 길에 보이는 국화며 낙엽까지 모두 다 마음이 간다. 반가운 사람을 기다리자니 사소한 모든 것이 허투루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새벽댓바람부터 왔으니 사람이 있을 턱이 없어 궁금한 게 있어도 물을 사람조차 없다. 여덟 개나 아홉 개 되는 정자 기둥마다 돌아가며 몸을 기대어 본다. 그렇게 해도 시간은 더디 가고 온다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그해 겨울에 그는 드디어 유배에서 풀려나 육지 땅을 밟게 된다.
흰 저고리 입은 모습 눈앞에 어른거려
문 나와 자주 볼 제 뉘엿뉘엿 해 기우네.
돌아와 슬픈 말을 많이는 하지 마렴.
늙은 아비 마음은 너무나 서글퍼지리니.
素服依依在眼前 出門頻望日西懸
歸來愼莫多悲語 老我心神已黯然
김우급(金友伋),「딸아이가 친정 오는 것을 기다리며[待女兒歸覲]」
내 딸이 멀리서 오는가 한자리에도 있지 못하는 마음이다. 문턱이 닳도록 들락날락 하다가 어느새 해질녘이 다 되었다. 딸아이는 돌아와서 무슨 이야기를 전해줄까? 제발 기쁘고 행복한 소식만 가득하기를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자애로운 시댁 어른, 곰살 맞은 사위, 재롱 떠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밤새 나누고 싶다. 행여나 수심 겨운 얼굴로 속상한 말들이 딸 아이 입에서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 실은 기쁘고 즐거운 이야기만 듣고 싶다는 게 아니라, 딸에게 나쁜 일들이 더 이상 없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셈이다.
[1]
모진 바람 산마루서 세차게 불고
빗줄기에 세찬 시내 건너기 어려우리.
여윈 말 타고 오기 얼마나 고달플까?
먼 데서 온갖 걱정 매일 끝없네.
㥘風穿嶺頓 愁雨厲川艱
羸馬行何苦 遙憂日萬端
[2]
사람을 기다림은 원래 아픈 법
더군다나 먼 곳에서 자식을 기다림에랴.
살아서 할 수 있는 건 자식 걱정뿐이니
곤궁한 처지에 아비 노릇 부끄럽네.
需人元自苦 竢子况天涯
生事憂兒輩 竆途愧作爺
[3]
궂은 비 삼일 동안 퍼부어대서,
먼 길 올 내 아이가 마음 쓰이네.
하늘의 뜻 지척에도 달라지노니,
오는 길에 혹시라도 맑게 갰으면.
苦雨連三日 關心遠途來
天心殊咫尺 行處或淸開
이광사(李匡師),「아이를 기다리며[待兒行 三首]」
이 시는 이광사가 유배지에서 자식을 기다리며 느꼈던 감회를 적은 것이다. 1756년 2월에 영익이 다녀가고 8월에는 긍익이 오기로 했다. 그러나 온다던 장남은 오지 않고 감감무소식이다. 모진 바람과 세찬 빗줄기에 고생하지 않는지, 변변찮은 말 때문에 골탕이나 먹지 않는지 걱정이 되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기약 없는 기다림은 오직 기다림만 허락할 뿐이다. 날씨는 근심을 몰고 오며, 상상은 불안을 가져온다. 생각해보면 이 못난 아비 탓에 아이들까지 이런 고생을 시키는 것 같아 죄스럽기만 하다. 게다가 3일 연속 그치지 않고 퍼붓는 빗줄기가 야속하다. 날씨란 고개를 사이에 두고서도 달라지는 법이라며 애써 위로하며, 아이가 오는 길은 맑게 갠 하늘이기를 기도해 본다.
날마다 오늘 온다 말을 하면서
집 앞 길 수도 없이 바라다보네.
어느덧 숲 속 안이 어두워지면,
그때마다 취객처럼 허물어지네.
日日謂當來 前途望百回
無端林色暝 每似醉人頹
이광사(李匡師),「아이를 기다려도 오지를 않아[待兒不至]」
온다던 시간들이 훌쩍 지났다. 이제 부아가 날 지경이다.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할 수 있는 건 집 앞에 나와 서성거리는 일뿐이다. 기다림은 고통스럽지만 상대방에 대한 마음은 깊고도 단단해진다. 기다리다 지친 아버지의 다잡은 마음은 자꾸만 무너져 내린다. 또다시 하루가 저물어 가면 몸과 마음은 취객처럼 허물어져만 갔다.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처럼 간절한 것이 있을까? 약속된 시간이 되면 자식을 만날 수 있다해도 기다림은 결코 쉽지 않은데, 연락이 끊겨 무작정 자식의 연락을 기다리는 일은 차마 못할 일이다. 자식에게 곧바로 연락을 취할 수 없었던 예전에는 더욱더 아이를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아이가 눈앞에 나타나면 그동안의 고통스런 기다림의 순간을 한방에 보상 받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