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로 보는 일상의 재발견 –자음과 모음 근간-
거북선
우리에게 이순신은 어벤져스에 나오는 슈퍼 히어로같다. 절대 열세인 상태에서도 이순신이 거북선을 타고 등장하기만 하면 왜놈들을 일거에 물리쳤다. 거북선은 고종 때까지도 실물이 남아 있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지금 거북선의 구체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는 없다. 거북선의 트레이드 마크인 철갑도 사실이 아닐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거북선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한 필 말로 길을 가다 큰 바다에 임하여
훌쩍하고 나 혼자서 진남루에 올라섰네.
장군도 나루에는 찬 조수에 비 내리고
충무사 옆 고목에는 가을이 들었다네.
떠들썩한 어시장은 성곽에 이어지고
거북선은 적막하게 빈 언덕에 매여있네.
하늘 닿은 드넓은 물 풍파는 고요한데
뜬 인생 마침내 갈매기와 벗을 삼네.
匹馬行臨大海頭 飄然獨上鎭南樓
將軍渡口寒潮雨 忠武祠邊古木秋
魚市喧譁通暮郭 龜船寂寞繫虛邱
連天水闊風波靜 終使浮生伴白鷗
김윤식(金允植), 「좌수영에 들르다[過左水營]」
이 시는 당시까지 거북선의 실물이 존재했음을 알려주는 대단히 중요한 자료이다. 거북선은 좌수영의 빈 언덕에 쓸쓸히 녹슨 채 매여있었다. 여수 좌수영 주변의 진남루(鎭南樓), 장군도(將軍島), 충무공 사당 등 유명한 장소들이 등장한다. 진남루에 올라서 바라보이는 풍경을 담고 있다. 빈 언덕에 매여있는 거북선은 영웅을 잃은 현실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천구(天狗)가 달을 삼켜 큰 바다 말라붙고
된바람 만 리 불어 부상을 꺾었다네.
주흘산(主屹山) 큰 관문이 이미 다 짓밟히자
십 만의 왜놈 수군 돌진하여 들이쳤네.
원씨 집안 늙은 장수(원균) 무능한 사람여서
갑옷 입고 섬 있으니 원군도 끊어졌네.
국토 수호 중한 책임 너와 나 따질 수 없으니,
갈대로 건너더라도 어찌 수수방관하랴!
전라 좌수영 남문이 활짝 열리고
둥둥 북 울리면서 거북선 출정하네.
거북도 아니었고 배라고도 못할진대
높이 솟은 판옥선 큰 물결 밀고 가네.
네 다리 빙글빙글 수레의 바퀴 같고
양 옆구리 비늘 펼친 듯 창(槍) 구멍 만들었네.
스물네 개 노는 물결 속에서 춤을 추니
노 젓는 수군들 파도 속에서 앉을락 누울락 노를 젓네.
코로 검은 연기 뿜고 눈에는 불 켰으니
펼치면 용이 놀듯 움치면 자라가 오므리듯.
왜놈들 뻐끔대며 통곡하다 시름 하니
노량 한산 앞바다에 붉은 핏물 넘실대네.
적벽의 소년 주유 때 만나게 요행이었고
채석의 서생 우윤문(虞允文)은 용단을 과시했지만
누가 바다 가르며 온갖 전투 치르면서
고래, 악어 베어대도 칼날은 온전할 수 있으랴.
그로부터 2백 년 뒤 지구가 트이더니
증기선 동쪽 오자 불꽃이 해 가렸네.
평화로운 우리 땅에 호랑이가 뛰어들듯
화기가 천지 흔들며 살기를 발하였네.
저승 계신 충무공을 모셔올 수 있다면
주머니 속에 응당 신묘한 전술 있을테니
거북선처럼 이기는 지혜 다시금 짜내시면
왜놈들 목숨 빌고 양놈들 섬멸되리.
天狗蝕月滄溟竭 罡風萬里扶桑折
主屹雄關已倒地 舟師十萬仍豕突
元家老將一肉袋 孤甲棲島蚍蜉絶
封疆重寄無爾我 葦杭詎可秦視越
左水營南門大開 淵淵伐鼓龜船出
似龜非龜船非船 板屋穹然碾鯨沫
四足環轉爲車輪 兩肋鱗張作槍穴
二十四棹波底舞 棹夫坐臥陽侯窟
鼻射黑烟眼抹丹 伸如遊龍縮如鼈
蠻子喁喁哭且愁 露梁閒山漲紅血
赤壁少年逢時幸 采石書生誇膽决
孰能橫海經百戰 截鯨斬鰐鋩不缺
二百年來地毬綻 輪舶東行焰韜日
熨平震土虎入羊 火器掀天殺機發
九原可作忠武公 囊底恢奇應有術
創智制勝如龜船 倭人乞死洋人滅
황현(黃玹),「이충무공 귀선가(李忠武公龜船歌)」
이 시는 1884년 그의 나이 30세 때 쓴 작품으로 32행이나 되는 장시(長詩)이다. 황현은 「촉석루(矗石樓)」,「의암사(義巖祠)」등의 우국시를 지었고, 충신 의사를 추모하여 홍만식(洪萬植), 조병세(趙秉世) 등의 전기를 시로 지었다. 또한 매복(梅福), 관령(管寧) 등 중국의 지사를 재조명하기도 했다. 경술국치를 당하자 절명시(絶命詩)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8구는 임진왜란 때의 정세를 간략히 제시하였다. 먼저 왜적의 침략을 제시하고, 그 다음으로 문경새재가 함락된 사실과 원균의 무능함을 말했다. 특히 8구는 전라좌수영에 있던 이순신이 경상우수영에 있던 원균의 어려움을 모른 척 할 수 없었다는 뜻을 담고 있다.
9∼20구는 거북선의 모습과 활약을 이야기했다. 거북선에 대해서 이렇게 상세하게 묘사한 시는 찾아보기 힘들다. 거북선이 장쾌하게 진격하는 모습으로부터 시작하여 거북선의 전모를 상세히 묘사하였다. 특히 거북선이 왜놈들을 제압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21∼24구는 충무공을 중국 인물에 빗대어 치적(治積)을 부각시켰다. 적벽소년(赤壁少年)은 적벽대전에서 화공법(火攻法)으로 조조(曹操)를 물리친 주유(周瑜)를 가리키고, 채석서생(采石書生)은 금(金)나라의 군사를 맞아 채석(采石)에서 격파한 우윤문(虞允文)을 가리킨다.
25∼32구는 다시 현재의 시점으로 돌아온다. 암울한 조선의 현실과 임진왜란의 위기를 병치시킨다. 외세의 침탈을 화륜선[輪舶]과 호랑이[虎]에 빗대어 표현했다. 이러한 민족의 위기에 이순신 같은 영웅이 다시 살아온다면 참담한 현실을 일거에 반전시킬 수 있으리라는 간절한 염원을 담았다. 왜놈과 양놈들을 모두 섬멸할 대상으로 표현해서 제국주의에 대한 분노를 드러냈다.
이 시에는 일제의 검열에 의해 전체를 삭제하도록 하라는 표시가 남아 있다. 매천은 일제의 서슬이 퍼런 당시에 이러한 시를 지었으니, 얼마나 대단한 의기(義氣)를 가졌던 인물이었는지 알 만하다. 나라가 안팎으로 어려울 때마다 이순신과 거북선은 소환 되곤 했다. 당시는 제국주의가 광기를 뿜던 시기였다. 그야말로 요기(妖氣)처럼 뒤덮은 외세를 물리쳐 줄 구국(救國)의 영웅이 필요했다. 거북선[龜船]을 신출귀몰 몰아대며 왜놈을 섬멸했던 충무공 이순신과 같은 영웅이 다시 등장해 외세의 더러운 기운을 일시에 몰아내 주리라는 절박한 기다림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