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구글번역기가 어느새 야쿠트어도 지원한다. 원랜 얀덱스 번역기를 썼었는데... 근데 완벽하진 않은 것 같다. 자세한 건 후술.
1. '야쿠트어가 재미있는 이유'라는 글을 써서 야쿠트어가 튀르키예어(터키어)보다 훨씬 하드코어한 모음조화와 자음동화로 수많은 이형태를 거느리는 멋진 문법형태소를 여럿 갖고 있음을 화려하게 보여주려고 했는데, 한국어교원 자격증 준비하면서 이런 글까지 쓰기는 역시 좀 무리였나 보다. 미처 완성하지 못했다. 오래 미룬 소재지만 한 번 더 미뤄야겠다.
2. 대신 자료조사 과정에서 재미있는 걸 몇 가지 찾았다.
예전에 강덕수 교수님의 야쿠트어 교재를 언어학 방 친구들에게서 생일선물로 받았다.
(저자이신 강덕수 교수님과는 어쩌다 보니 딱 한 번 외대 앞에서 김치찌개를 같이 먹은 적이 있는데, 아마 기억 못 하실 것이다.)
이번에 써 보려던 야쿠트어 글을 '블챌' 글로 인정받기 위해 별 생각 없이 이 책을 '글감'으로 첨부했는데,
기왕 첨부한 김에 좀 보자 싶어 펼쳐서 읽어 보다가 눈길을 끄는 대목을 발견했다.
몇 가지 공통튀르크어 어형과 야쿠트어 어형을 대조하는 내용이었는데, 그 중 전에 블로그에서 다뤘던 сыл(年)이 언급되어 있었다.
공통 튀르크어에서는 'year'라는 말이 j-로 시작하는데 야쿠트어에서는 s-로 시작한다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참조.)
https://brunch.co.kr/@saokim/71
그런데 그 밑에 아주 흥미로운 내용이 있었다.
야쿠트어에는 '올해'를 가리키는 'бы-йыл (bı-yıl)'이라는 합성어가 있다는 것이다. (교재 9쪽)
이는 '오늘'을 가리키는 'бү-гүн(bü-gün, cf. Turkish bu-gün)'에서도 볼 수 있는 'бу(bu, 'this')'와 'year'의 합성어라고 한다.
위 링크 내용과 같이, 윅셔너리에서는 'быйыл (bıyıl)'이라는 단어가 бу (bu, 'this')와 сыл (sıl, 'year')의 'contraction'이라고 설명하지만,
나는 혹시 이것이 '볍씨'와 같은 케이스는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그러니까 합성어 안에 들어 있는 말이 규칙적인 음운 변화를 피해가서 현대어에까지 화석처럼 남아 있는 그런 케이스 말이다.
'씨'를 나타내는 중세국어 단어는 'ㅄㅣ(psi)'였지만 ㅂ계 어두자음군이 p-를 잃고 된소리로 바뀌면서 모두 '씨'가 되었는데, '벼 + ㅄㅣ'의 합성어였던 '볍씨'에는 이러한 규칙적 변화가 적용되지 않고 'ㅄㅣ'의 초성에 있었던 'ㅂ'이 그대로 남아 있다. ('햅쌀', '찹쌀' 등도 마찬가지)
야쿠트어의 조상 언어에서 어두 'y-'가 's-'로 변화하여 모든 йыл이 сыл로 바뀔 때에도, 'быйыл (bıyıl)'이라는 합성어 안에 들어 있던 йыл(yıl)만큼은 그 변화를 피해 원형을 유지한 게 아닐까?
(강덕수 교수님 교재의 설명도 무언가 그런 방향을 떠올리게 하는 투로 되어 있다.)
그런 생각이 재미있다. 더 자세히 설명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지금으로선 이 정도 써 두는 게 한계다.
3. 원래 쓰려던 글의 핵심 내용은 야쿠트어의 복수형 접미사가 튀르키예어(터키어)의 그것보다 훨씬 다양한 이형태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 중 어근의 마지막 모음이 ө(ö)인 경우에 등장하는 -лөр(-lör), -төр(-tör), -нөр(-nör), -дөр(-dör)의 존재가 개인적으로는 아주 압도적인 무언가로 느껴지고는 한다.
(체계상 뭔가 ү/ü에 대해서도 이 녀석이 나와야 할 것 같지만, 아쉽게도 ү/ü에 대해서는 그냥 -Ler로 퉁친다.)
강덕수 교수님 교재에서는 төбө-лөр(töbö-lör) '머리들', күөл-лөр(küöl-lör) '호수들' 과 같은 예를 확인할 수 있다. (43쪽)
그런데 이 -Lör 계 어미가 아쉽게도 점차 -Ler 계 어미에 합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구글번역기에 'lakes'를 넣으면 күөллөр(küöl-lör) 대신 күөллэр(küöl-ler)가 나오고, 야쿠트어 위키백과의 'күөл' 문서에서도 күөллэр(küöl-ler)라는 어형을 여러 번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다행히(?) 'heads'는 төбөлөр(töbö-lör)로 잘 번역되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어형인 '새들' көтөрдөр(kötör-dör)는 아예 그 제목으로 위키백과 문서가 따로 만들어져 있다.
어쩌면 그냥 단모음(單-, monophthong) ө(ö)와 이중모음(?) үө(üö)가 모음조화 시스템에서 다소 다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뿐일지도 모르겠다.
4. 야쿠트어 구글번역기에 'birds'를 넣으면 내가 좋아하는 көтөрдөр(kötör-dör)가 아니라 кустар(kus-tar)라는 엉뚱한 어형이 튀어나온다.
출퇴근길 듀오링고로 다져진 튀르키예어(터키어) 실력으로, 이것이 튀르키예어 'kuş(새)'와 같은 어원임을 곧장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birds'를 кустар로 번역하는 것은 구글번역기의 오류인 듯싶다.
야쿠트어의 кус(kus)는 '새'가 아니라 '오리'를 가리키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윅셔너리에서 кус를 찾아도 'duck'으로 나오고, кустар라는 위키백과 문서에는 오리 사진이 크게 걸려 있다.
5. 야쿠트어 문법을 잘 모르지만, 만약 우리말이나 튀르키예어(터키어)에서처럼 복수 접미사가 문법적으로 강제되지 않는 거라면, көтөр-дөр라든가 кус-тар와 같이 위키백과 표제어가 복수형으로 되어 있는 것은 꽤 특이하다.
우리말 위키백과야 말할 것도 없이 '새들'이나 '오리들'이 아니라 그냥 '새'나 '오리'를 표제어로 삼고 있고,
튀르키예어(터키어) 위키백과에도 표제어는 모두 단수형으로 되어 있다. Ördek, Kuş.
혹시 러시아어의 영향일까 싶어 러시아어 위키백과를 확인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표제어가 모두 복수형으로 되어 있다. Утки, Птицы.
위세 언어가 이런 데서도 영향을 끼친다는 게 재미있기도 하고, 묘하게 아쉽기도 하다.
5.1. 전에 야쿠트인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도 떠오른다. 러시아어의 영향으로 2인칭 복수 대명사 эһиги를 존댓말용으로 쓰는 추세가 있으나, 자기는 본디 야쿠트어에 없던 이런 어법을 거부하고 사장님에게도 2인칭 단수 대명사 эн(cf. Turkish 'sen')을 꿋꿋하게 사용했는데, 사장님이 다소 당황한 기색은 있었지만 그냥 자연스럽게 대화했다던 이야기. 나는 이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 언어순수주의적 규범주의를 다 좋아하는 건 아닌데, 그래도 소수언어가 보존되는 건 반가운 일이니까...ㅋㅋ
https://m.blog.naver.com/ks1127zzang/222991252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