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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오 김 Jun 06. 2023

4 - '나는 짜장면!' 구문에 대한 토막글

정보구조를 열심히 공부하자.


- (친구 남편 분이 딸을 원했는데, 태어날 아기가 아들이라는 말을 병원에서 듣고 아쉬워했다는 이야기가 있은 후에)

A: 근데 언니가 아들이잖아,

B: 응.

A: 우리 언니가 아들이잖아,

B: 응.

- (뒷이야기는 개인정보라 삭제한다)



20분 전에 실제로 있었던 대화를 기록해 둔다. 녹음한 건 아니고 기억에 의해 적는 거라 부정확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나,

언니가 아들이잖아’는 확실히 있었고,

말하는 이와 듣는 이 모두 ‘언니가 낳은 아이는 아들이다’라는 뜻으로 이해했으며,

해당 문장에 대해 말하는 이와 듣는 이 모두 전혀 이상함을 느끼지 않았다.

그리고 개인정보가 들어 있어서 삭제한 뒷부분 대화에서도 어휘만 갈아끼워진 동일한 구성[낳은 자-가 아들/딸-이다]이 반복해서 등장했다. (이 구성이 구문부에 Entrench되어 있는 등재 구문 항목이라는 주장은 아니다.)


이 대화를 굳이 적어두는 것은,

1. 일단은 언어학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짜장면’으로 알려져 있는(?) “한국어 ‘-는’의 특이성”이 사실은 ‘-는’의 특이성이 아니라는 것(‘-가’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므로)을 상기시키기 위함이다.

* 계사 ‘-이-’의 특이성이라거나?

* 주제어 내지 초점어 처럼 정보구조와 관련한 문장 성분이 한국어 문법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 같다.

* 이를테면 ‘나는 짜장면’, ‘나는 짬뽕’ 하는 식으로 각자의 주문을 취합한 후에 가게 점원에게 전달할 때 누가 뭘 골랐었는지 생각이 안 나면, ‘니가 짜장면이었나?’라고 묻는 상황도 나의 원어민 직관상 충분히 있을 법하다.


+ 네이버 블로그의 서로이웃 토마노타 님께서 댓글로 가르쳐 주신 내용을 참고할 때 여기서 사용된 ‘언니가 아들이잖아’에 대해 정보구조적으로 비인가 화제(unratified topic)라는 지위를 식별할 수 있을 것 같다. 비인가 화제인 명사구에 대해서는 ‘-이/가’와 ‘-은/는’이 둘 다 사용가능하다고 하는 것 같다.


일단 ‘언니-아들’이라는 명제 자체의 정보구조 지위는 듣는이에게 지식적으로 구정보라서 ‘-잖아’가 쓰인 것인데, 담화에는 새로 도입되는 것이라서 ‘언니’에 비인가 화제 표지가 실현되었나 보다. 실제로 뒷부분은 ‘언니-아들’을 화제로 하는 새로운 이야기였다.


정보구조나 운율 같은 관련 주제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아직 아는 바가 너무 없어서 답답하다. 우선 비인가 화제에 대해 다룬 함병호(2016) 선생님의 논문이 선행연구에 대한 소개를 비롯해 자세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 같으니 기회가 될 때 한번 읽어 봐야겠다.


++ ‘나는 짜장면’은 정보구조상 ‘언니가 아들’과는 다른 현상이라는 점 또한 밝혀 두어야 한다. 나는 겉보기에 ‘주어’로 보이는 것과 계사의 보어처럼 보이는 것이 서로 다른 지시체를 갖는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느껴 함께 제시했으나 결국은 서로 다른 현상이다.




2. 좀더 일반적으로는,

영문법 등을 조금 아는 사람이 국어 문장에 대해 프로크루스테스적인(Procrustean) 억지 잣대를 들이대어

‘언니가 아들이잖아’, ‘나는 짜장면’ 또는 ‘커피 나오셨습니다’와 같은 문장에 대해, 그것이 분명히 원어민이 일상적으로 발화하고 수용하는 문장임에도 불구하고 ‘비문(ungrammatical~unattested(!))’이라는 말을 하는 데 대해 불평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자기가 어설프게 아는 어떤 이론을 일관되게 적용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눈앞에 버젓이 있는 데이터를 부정해 버리는 태도가 싫다. 데이터가 이론에 포섭이 안 되면 이론을 수정해야 마땅할 것이다. 과학철학과 과학사에서는 이런 이야기도 하지만, 그건 눈앞의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정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고, 그냥 지금으로서는 이 데이터를 설명할 수 없다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태도 위에서 추후에 추가적인 데이터를 얻게 되면 이론을 수정하지 않고도 설명할 수 있게 될 때도 있다는 것일 뿐이다.


후자에 대해 좀더 할 말이 많지만 시간이 없어서 우선은 여기서 멈추고,

중국어에서도 이런 표현이 거의 동일하게 나타난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공유하며 마치고자 한다.

언니, 당신은(그쪽은) 아들이에요 딸이에요?
아주머니가 '나는 아들이에요'라고 말하고 있다.

<咱们结婚吧>라는 중국 드라마에서 '만인 맞선 대회'가 열려 부모들이 자기 아들/딸의 프로필을 들고 만나 대화하는 장면이다. 자기가 딸 프로필을 들고 왔는데 상대방도 딸 프로필을 들고 있으면 다른 사람을 찾아가고, 상대방이 아들 프로필을 들고 있으면 대화를 나눠 보고 하는 식이다.


위 사진을 보면 아들이 있는 어머니와 딸이 있는 어머니가 서로 만나서, 아들이 있는 어머니가 '我是儿子', 즉 '나는 아들이에요'라고 말하고 있다.


저 장면 말고도 앞뒤에서 '당신은 딸을 결혼시키러 나온 거냐, 아들을 결혼시키러 나온 거냐'라는 의미에서 '당신은 아들이냐 딸이냐', 그에 대한 대답으로 '나는 딸이다', '나도 딸이다'와 같은 대화가 자주 오간다.


직접 들어 보려면 아래 영상을 보면 된다.


https://youtu.be/i-pYUBf8Tnw?t=495



(마지막 사진에서 我是儿子라고 말하고 있는 건 사진에 앞모습이 나오고 있는 등장인물이 아니라 사진에 뒤통수만 보이고 있는 상대방이지만, 두 분 다 어머니이므로 본문의 맥락상 중요한 정보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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