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방 선거가 있는 날이었다. 빨간 날이다. 모처럼의 휴일이지만, 좋으면서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우, 또 뭘 하고 하루를 보내야 할까?'
이번 주는 수요일도 휴일, 주말에 이어지는 현충일까지 휴일인지라 8일 중에 4일을 쉰다. 어마어마한 주다. 명절도 아닌데 말이다.
아이가 있으면 휴일에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일정도 없다면, 우리 세 식구는 각자 안방과 거실과 서재를 차지한 채, TV와 노트북 또는 핸드폰, 게임기 중 하나씩을 마주 보고 누워 뒹굴며 한심한 하루를 보낸다. 남편은 주로 축구나 골프를 보거나 정치 유튜브를 보고, 나는 남이 뭐 예쁜 거 샀는지 보여주는 쇼핑 언박싱 유튜브나 동네 맘 카페 게시글들을 본다. 더 이상 볼만한 콘텐츠가 없을 때까지 본다. 아이는 닌텐도 포켓몬스터 게임을 하거나 신비 아파트, 포켓몬스터 만화를 본다.
솔직히 오전까지는 마음이 괜찮다. 우리도 쉬고 놀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오후로 넘어가면서까지 이렇게 보내고 있을 때는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짜증이 난다. 영양은 없고 조미료 범벅의 탄수화물만 먹은 날처럼, 우리 가족이 굉장히 불행하고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럼 나는 (방금까지도 유튜브 속을 헤매고 있었으면서) 사감 선생님 같은 얼굴을 하고 남편과 아이의 전자제품을 압수하며 훈계를 하곤 하는 것이다.
주부란, 한 가정의 엄마란, 상당한 창의력을 요구하는 직업이다.
그 첫 번째는, 매일의 식사 메뉴를 생각해내야 하는 일이요,
두 번째는 주말과 휴일에 가족의 스케줄을 정하는 일이다.
루틴이 없는 날들을, 가족이 함께 무엇을 하면 좋을지 생각해 내는 것. 어디를 가면 좋을지 검색하고, 공부하고, 예약하고, 가족 구성원들을 살살 꼬드겨 몸을 일으켜 집 밖으로 나가게 하는 것. 보통 일이 아니다.
오늘은 공원이나 나갈까 하다가, 날이 너무 덥고 동네 공원들이 지겹게 느껴졌다. 이럴 때 남편에게 뭘 하면 좋을지 물으면 10년을 한결 같이, "고궁이나 갈까?"라고 대답한다.
남편이 가진 휴일의 카드는 이게 전부다. 고궁(주로 경복궁)을 갔다가 명동칼국수를 먹고 오는 것.(이미 적어도 열 번은 했던 일이다;;;;)
결국 오늘은 일산으로 오리고기를 먹으러 갔다. 유명한 맛집이고 커다란 건물 두 채가 전부 식당인 곳이다. 갈 때마다 굉장히 맛있게 먹지만, 나는 항상 숯불 연기 향이 그득한 고기를 먹으며 건강에 아주 나쁘겠다는 걱정을 한다. 모든 직화 고기가 마찬가지이긴 하겠지만, 유독 이 집은 연기 냄새가 강하다.(1년에 한 번만 가야겠다.)
소화도 시킬 겸 일산 호수공원에 갔다. 아무튼 우리 동네 공원과 생김이 다르니까 신선하긴 했다. 호수공원을 크게 한 바퀴 돌고 싶었지만, 매우 배가 부르고 무척 더웠다. 조금 걷다가 돗자리를 펴고 누웠다. 그늘은 시원했다. 아무 놀잇감 없이 달랑 돗자리만 들고 온 우리는, 삼심 분쯤 뒹굴대다 일어났다.
마지막 코스는 카페. 아주 넓고 커다란 식물 화분들로 멋있게 꾸며놓은 카페를 찾아갔다. 아직도 배가 불렀지만 커피와 빵을 시켰다. 거북이 수조가 있어서 아이가 즐거워했다. 거북이 구경이 끝나자 우리 셋은 또 각자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만날 함께 있는 사이, 뭐 새롭게 할 이야기도 없으니까, 이렇다.
먹고 쉬고, 또 먹었을 뿐인데 집으로 오니 몹시 피곤했다. 개표 방송을 잠시 보고, 아이 숙제를 시키고 알레르기 약을 먹이고,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나저나 이틀 뒤엔 또다시 주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