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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녀 Jul 30. 2020

코로나19 시절을 살고 있는 나에게, 아들에게

 

올해 3월 초의 동네 놀이터에서였다. 나는 코로나19로 갈 곳 없고 할 일 없는 여덟 살 내기 아들과 놀이터로 나갔고, 역시나 비슷한 처지인 아들의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났다. 아이들이 마스크를 쓰고 노는 동안, 엄마들은 개학 연기라는 놀라운 사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어제 본 TV 프로그램 이야기를 했다.

“1천6백 몇 년도인가 유럽에 전염병이 돌았을 때 학교가 2년 동안이나 휴교했었대.”

“음… 언니, 그건 옛날이니까 그랬겠죠. 지금이랑 어디 같으려고요.”

“그렇지?”

그때의 우리는 (순진하게도) 개학 연기가 2주로 끝날 줄 알았다. 모든 학교가 개학을 미루는 것만 해도 큰 충격이었으니까. 그 정도면 역대급 바이러스에 상응하는 피해였고, 메르스나 사스에 비하면 큰 타격이니 그것으로 물러갈 줄 알았다.


4월, 5월까지 개학은 계속 연기되었다. 우리는 작년 가을부터 초등 책가방을 준비하고, 새 옷을 장만하고 실내화며 공책이며 준비물들을 사느라 부산을 떨었는데, 한 번, 또 한 번 연기되는 개학으로 봄옷은 입기에 더워졌고 실내화는 작아졌으며 준비물에는 먼지가 쌓여갔다.

6월 초 등교 개학을 하면서 입학 준비물은 세상 밖으로 나왔지만 주 1회 등교는 사실상 휴교에 가까웠다. 끝이 보이지 않는 가정 보육에 엄마들은 전업맘, 워킹맘 할 것 없이 지쳐갔다.


처음에는 희망이 있었다. 2주면 끝나겠지, 한 달이면 끝나겠지…. 아이를 위해 집콕 놀이도 검색해보고 간단한 과학 실험도 찾아보았다. 아이와 베이킹도, 요리도 했다. 바람직한 엄마로서 가능한 한 다양하게 놀아주려고 애썼다.

개학 연기가 한 달이 넘어가면서 인내심은 바닥이 났다. 엄마는 세상 그 누구보다 아이를 사랑하지만 인간에게는 자유가 필요하다. 말하지 않을 자유, 가만히 있을 자유, 아무의 시중도 들지 않을 자유, 조용히 커피 한 잔 마실 자유, 어린이가 아닌 어른과 대화할 자유.

풀 곳 없는 스트레스는 괜한 쇼핑으로 이어졌다. 입고 갈 곳도 없는 새 옷과 신발, 액세서리를 사들이거나, 집안에서 힐링이 필요하다며 향초, 화분, 씨앗 등을 주문했다.


석 달이 넘어가자 헛된 희망을 버리고 정신을 차렸다. 백신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계속 이렇겠구나. 학교도 못 가고 여행도 못 가고 비대면 시대로 적어도 1~2년을 살아야 하는 거구나. 우리가 해외 자유 여행 마지막 세대일 것이라는 말도 들렸다.


곧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때는 아이가 마냥 불쌍했다. 화사한 입학식도 없이 초등학생이 된 것이, 제대로 된 1학년 생활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친구들을 사귀지 못하는 것도, 삼시세끼 대충 차린 엄마 밥만 먹는 것도. 답답한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하고, 놀이동산도 여행도 갈 수 없다는 것도.

넓은 세상을 누리지 못하고 좁은 아파트 안에서 엄마와 부대끼는 것이 전부인 아이의 삶이, 애처로웠다.

그런데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불쌍하다고 생각하면, 아이들은 정말 불쌍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  


코로나19 시절을 살고 있는 아이가 안쓰러울 때마다 생각한다. 어쨌든, 이 정도면 전쟁 세대보다는 나은 것 아닌가. 전쟁을 겪은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도 어떻게든 정신을 붙잡고 살아 남았다. 이 정도는 별일 아니다, 라고.

인류에게 평화와 자유와 물질적 풍요가 늘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기억하려고 한다.


전문가들의 말을 들어보면, 올 가을 겨울 코로나로 인한 두 번째 고비가 올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독감의 유행과 함께 올 경우, 독감과 코로나를 구분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에 더 힘들 수 있다는 것이다. 치료에도 혼선이 오고, 지금과 같은 환자 추적과 격리도 더 힘들어질 것이다.


서두에 말했던 그 TV 프로그램을 다시 봤다. 어렴풋이 본 내용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그 전염병은 페스트였다. 1665년 페스트가 유행하자, 런던의 케임브리지 대학은 2년간 긴 휴교를 했다.

당시 그 대학에 다니던 사람 중에 아이작 뉴튼이 있었는가 보다. 그도 휴교로 집으로 돌아갔고, 할 일이 없으니 공부를 했다. 그리고 미분, 적분, 중력의 법칙 같은 수학과 물리학 이론을 완성했다고 한다.(<요즘 책방 : 책 읽어드립니다> 23회)


전염병의 시대에도 삶은 이어진다. 나는 할 수 있는 노력을 하고, 가능한 일상을 담담하게 살아보려 한다. 어느 시대에나 인류에게는 문제가 있었고, 역사는 그 문제를 넘어 계속 이어져 왔다.

억울할 것은 없다. 코로나 19는 그동안 인간이 행한 일들의 대가인 측면도 있다. 공룡처럼 멸종되는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어쨌거나 우리는 오늘을 살아야 한다. 이런 나의 태도는 아마도 '적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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