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은 어떻게 우리를 바보로 만드는가
지난주 오랜만에 서점에 갔다. 합정에 있는 교보문고에 아이와 함께 들렀다. 집에서 종일 빈둥대는 아이를 보기가 속이 쓰려서 모처럼 서점에서 책도 구경하고, 사고, 점심까지 해결하고 올 계획이었다.
계산을 하고 랩핑 된 비닐을 뜯어 아이가 책(<최강 몬스터 왕>)을 탐독하는 동안, 나도 매대에서 한 권을 골라 푹신한 소파에 앉아본다. 관심 있게 보는 작가인 K 작가의 여행 에세이가 눈에 띄어 집어 들었다. 첫 페이지부터 개인적인 사건을 맛깔나게 서술하는 것이 술술 읽혔다. 어느새 빨려 들어 읽다가 구입해서 함께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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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K 작가를 호의적으로 생각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는 유명하고 책도 많이 팔리는 인기 작가지만 나는 오랫동안 K 작가를 싫어했다. 그 이유는 내 첫 직장에서 그를 만났던 단 한 번의 경험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벌써 15~16년쯤 전의 일이다.
내 첫 직장은 잡지사였다. 1990년대 후반 벤처기업 창업의 붐을 타고 그 붐의 끄트머리쯤에서 만들어진 문화 콘텐츠 회사였다. 우리 잡지는 아직은 세상에 없었고 창간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수습기자였는데, 회사의 수석기자며 편집장이며 사장이며 모두에게 김 선배, 박 선배, 최 선배…라고 부르며(잡지사들의 문화가 대개 그랬다) 지냈다. 회사라기보다는 동아리 같았다. 선배들은 정이 많았고, 동기들은 열정이 많고 풋풋했다. 이틀에 한 번꼴로 새벽 두세 시까지 술을 마셨지만, 외로움을 많이 타던 나에게 그건 그렇게 싫은 일은 아니었다.
회사를 좋아했지만, 회사에서도 나를 좋아할지는 늘 자신이 없던 시절이었다. 나는 대학 학점도 나빴고 영어도 잘 못했다. 대학 시절 치열하게 이룬 다른 무엇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정쩡한 나에 비해 동기들은 훨씬 멋있어 보였다. 영화나 음악에 다들 조예가 깊었는데(대중문화 잡지사였다), 나는 잘 모르는 작가주의 영화라던가, 어떤 감독의 특징적인 성향이라던가, 미국의 대표적인 잡지라던가, 외국 영화나 음악 차트라던가에 대해 줄줄 꿰고 있었다.
그렇게까지 주눅 들 일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당시 회사 선배들의 학점도 나빴을 것이었고(학생운동을 하거나, 술 마시고 문학 이야기를 하거나, 영화·만화 오타쿠로 사느라, 아마도), 나는 나대로의 장점이 있어 뽑혔을 것이고, 다양한 관점의 기자가 쓰는 기사는 잡지에 더 좋을 수도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그걸 몰랐다. 그저 나 자신이 매일매일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하루는 회사 대표인 최 선배(라고 해두자)가 K 작가와의 미팅에 함께 가자고 했다. 우리 잡지의 문학 지면에 K 작가의 글을 싣는 등 도움을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네? K 작가라고요?"
당시에 이미 K 작가는 참신한 상상력과 위트 있고 깔끔한 문체로 촉망받는 젊은 작가였으며, 책도 잘 팔리는 편이었다. 기존의 작가 이미지와는 달리 그에게는 그 어떤 부채 의식도, 그늘도 없어 보였다. 세련되고 쿨한 외면까지 가진 K 작가는 어느 잡지사라도 모셔가고 싶어 하는 존재였다.
그런 K 작가와 전화 한 통으로 약속을 잡을 수 있다니! 촌스러운 나는 일단 최 선배의 능력에 감탄을 하고 만다. 대학 때 문학회 활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문학 담당 기자가 된 나는, 그렇게 K 작가와의 미팅에 참여하게 된다. 조금은 설레었고 떨리기도 했다.
K 작가와 우리는 어떤 카페에서 만났다.
"K 작가, 여기 우리 문학 담당 기자 00 씨."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K 작가에게 명함 한 장을 건넨 후 나는 두 사람의 대화를 경청했다. 병아리 기자인 내가 끼어들 여지는 별로 없었다.
대화는 주로 최 선배의 부탁과 K 작가의 망설임 없는 거절이었다. 부탁과 거절이 도돌이표로 반복되고 있었다. 그 거절은 무례하지 않았지만 그 어떤 고려도 없이 단호해서 서운하게 느껴졌다. 최 선배는 담배를 피웠고 K 작가도 담배를 피웠던가 안 피웠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은 가뜩이나 마른 체형인 최 선배가 꾸깃한 양복을 입고 몸을 구부정하게 한 채 다리를 꼬고 연신 담배를 피우던 모습이다. 양복이나마 좀 빳빳했더라면…, 왜 그날따라 그렇게 양복이 구겨졌어야만 했는지….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는 최선배가 무엇 때문인지 잠깐 자리를 비웠다. 테이블에는 K 작가와 나만 남았다.
문득 K 작가가 물었다.
"그런데 오늘 여기에 왜 나오신 거예요?"
"…네?"
순간 나는 부끄러움과 수치심으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 질문은 내게 '꿀 먹은 벙어리로 앉아만 있을 거면서 도대체 여기에 뭐하러 나왔나요?'라는 의미로 들렸다.
나는 최 선배가 돌아올 때까지(영원과도 같게 느껴졌던 5분쯤의 시간을) 한 마디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를 견디고 있었다. K 작가도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다.
그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본인의 질문을 '먹어'버리고 식은땀을 흘리며 앉아 있는 바보 같은 햇병아리 기자에 대해. 그가 인간에 대한 통찰력이 있는 작가라면, 스스로의 열등감에 자폭해버린 얼뜨기를 조금쯤은 가엾게 여겨주지 않았을까.
최 선배와 나는 소득 없이 회사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그 날 이후로 저 혼자만 잘나고 무례하고 재수 없는(그렇게 생각했다) K 작가를 싫어하게 되었다.
그 회사의 잡지는 결국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우리는 준비 호만 몇 번 만들며 1년 여를 보내다가 각자의 길로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그 뒤로 두어 개의 회사를 더 거치면서 어쨌든 기자가 되었다. 그리고 적어도 일에 있어서만은 열등감을 털어내게 되었다. 나는 나름대로 괜찮은 한 사람의 기자 또는 편집자였다고 생각한다. 낫 베드.
K 작가를 오래도록 싫어했는데 시간이 좀 흐른 뒤, 그의 어떤 에세이를 읽었다. 그의 개인적인 경험과 성향을 엿볼 수 있는 글들이었다. 그 에세이를 읽다가 문득 내가 그를 오해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클리셰가 없는 사람이었다. 상투적인 말을 안 하는 사람 말이다. 인사치레나 겸손을 위해 의례히 하는 말들이 그에겐 별로 없었다. 그의 말은 보통 액면가 그대로인데, 종종 사람들이 오해를 하곤 했다는 일화들.
십여 년 전 그 카페에서, 그는 정말 궁금해서 물어봤던 것이 아닐까? 내가 왜 나왔는지. 무능한 햇병아리 기자를 면박 주려던 것이 아니라 진짜 궁금해서, 알고 싶어서 물어본 것이 아닐까. 우린 종종 열등감이란 괴물 때문에 남의 말이나 의도를 완전히 곡해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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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사 온 K 작가의 책을 야금야금 아껴가며 읽었는데 중후반부터 지루해져 버렸다. 나는 전혀 관심이 없는 고대사를 들먹이고 있어 후루룩 뛰어넘기를 서너번하다 보니 책이 끝났다.
그러나 이번 책은 팔지 않고 소장하기로 한다(나는 줄곧 그의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보거나 샀다가 중고로 다시 파는 것으로 '복수'를 해왔다). 책 앞부분에 감동적인 대목이 있기도 하고, 이젠 그를 그다지 미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K 작가는 강연, 책을 통해 과거의 무례를 갚고도 남는 통찰과 즐거움, 감동을 내게 주었다. 지금의 그는 좋은 사람, 좋은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에겐 아무 상관이 없겠지만 어쨌거나 나는 이제 그를 용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