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판을 준비하는 사람

by 사피엔




지금 이 호텔은

머무는 장소가 아니다.

정착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학습이 발생하는 현장이다.



종착지가 아니라

과정을 통과하는 지점이며,

다음 환경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난 어디에도 눌러앉지 않는다.

그저

다음 국면을 위한 연료를 채집한다.



이제 나는

어디에 속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축적할 것인가를 먼저 계산한다.



사람을 보고,

구조를 보고,

돈이 새는 경로를 보고,

감정이 닳아 없어지는 지점을 본다.



조직은 언제나 불편하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 속에

가장 정확한 정보가 남는다.

위계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책임이 어느 지점에서 증발하는지,

권력이 어떤 어휘로 행사되는지를

나는 이론이 아니라

신체로 습득하고 있다.



이 경험들은

훗날 내 사업 기획서의 재료가 될 것이다.

현장에서 마찰을 견뎌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의 모욕은

감정이 아니라 데이터가 되고,

지금의 노동은

소모가 아니라 연료가 된다.

지금의 불안은

방향을 잃었다는 증거가 아니라

방향 감각이 아직 살아 있다는 신호이며,

지금의 고통은

미숙함이 아니라

설계에 지불하는 비용에 가깝다.



최종 목표는 단순하다.

내가 안정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

그리고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시스템을

남기는 것.



그러므로 지금의 불안은

실패의 전조가 아니다.

진로 변경 구간에서

의도적으로 속도를 낮춘 상태일 뿐이다.



나는 이미

‘그냥 사는 사람’의 궤도에서

이탈했다.

지금은 추락처럼 느껴질지라도

실제로는

다음 판을 준비하는 중이다.



나는

계속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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