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소재 고갈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by 이동훈

소재 고갈은 작가에게 무척이나 고역스러운 일이다. 글을 쓰고 싶어도 무슨 글을 써야할지 몰라 허둥대거나, 썼던 소재를 재탕하여 글을 쓰기도 한다. 아마 많은 아마추어 작가들이 소재를 잡지 못해 생기는 문제에 봉착해, 작품을 쉬이 써내려 가기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아마도 이건 소재가 부족하다기 보다는 소재를 포착하고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밀도있게 느끼지 못해 발생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예술가들은 온전히 감각과 사유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부분을 예민하게 받아들여 자신만의 미학을 굳건하게 전개해내야 할 때, 그러할 때 이 소재를 포착하는 능력이 참으로 중요해진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마주치는 요소들은 참으로 다양하다. 옆집 아저씨의 미소, 강아지와 산책을 나가는 부인,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아이까지 좁으면 좁지만 넓게 잡으면 한없이 넓은 게 바로 소재란 것이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느끼는 부분에서 조금만 더 집중해보면 마르셀 프루스트의 작품처럼 오로지 ‘의식’ 그 자체가 중심이 되어 글이 전개될 수도 있다. 마들렌의 향기에서 시작해 유년 시절까지 떠올리는 프루스트처럼 커피 한모금을 마셔도 그 한 모금이 작품의 소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영화를 보거나 미술관에 들러 감상하는 작품들도 소재로 나아갈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 준다. 서양의 상징주의 화가들이 희랍 신화에 착안하여 그림을 그렸듯이, 어딘가 하나에 집중해 소재를 뽑아내보자. 인상주의 화가의 작품들에서 빛이라는 소재가 중점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바탕으로 빛과 속도, 태양과 달, 우주와 행성 등 다양한 범위로 작품의 신변잡기함을 한계 끝까지 넓혀가 상상력의 저변을 체험해 볼 수도 있다. 김초엽 작가의 sf에서처럼 일상과 상상력을 연결해 작품을 만들어 낼 수도 있고, 카프카의 작품에서처럼 환상 세계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괴리함을 연결 시킬 수도 있다. 표현의 범위는 무궁무진하다.


만약 고민이 든다면, 어떤 작품을 써야 할지 어떤 소재를 정해야 할지 고민이 든다면 밖으로 나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관찰하는 것이다. 모든 것들을, 구름을, 주택을, 사람들의 표정을 말이다. 한 부분에서 착안해서 계속해서 거슬러 올라간다면 다른 중요한 지점들에까지 이르게 된다. 연어가 회귀해서 자신이 살던 강으로 거슬러 올라가듯, 소재의 다양함과 표현의 무궁무진함도 그렇게 진행된다. 다만 우리가 의식으로 그것들을 포착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사랑, 기쁨, 절망과 같은 인간의 희노애락 역시 글쓰기의 소재로 사용될 수 있다. 인간이 고뇌하고 고민했던 흔적들을 글로 기록해 놓은 종교의 경전들을 살펴보더라도, 지역에 상관없이 경전들이 얼마나 많은 철학과 예술과 문화 전반에 영향을 끼쳤는지 어림짐작 해볼 수 있다. 우리가 대충 지나쳤던 것들이 실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저 작은 가르침 하나, 짧은 단어 하나, 영어 문장의 구절 하나가 새로움을 낳는 문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작가가 될 순 없을 것이다. 글쓰기를 분명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테고, 있더라도 초고에서부터 퇴고까지 이르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니 여간 스트레스도 많이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펜을 들기 시작했다면 위대한 첫 항해의 신호를 알린 것이나 다름없다. 거기서 쭉 나아가면 된다. 사유라는 나침반을 동원해 글을 쓰고, 경험과 숙련을 통해 글을 계속해서 고쳐나간다면 틀림없이 훌륭한 작가가 머지않아 되리라 생각한다. 소재는 이미 당신 주변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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