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필에 대하여

by 이동훈

영화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이들을 일컬어 ‘씨네필’이라 부른다. 편집된 장면들, 감각적인 연출, 의도적인 미장센 등 영화의 여러 요소들을 분석하고 살펴보며 영화에 입문을 하고, 그들은 시간이 지나 씨네필이 되어간다. 영화는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을까. 그리고 어떻기에 사람들이 씨네필이 되어가는 것일까.


영화는 소설이나 시와 달리 영상과 음향으로 관객들을 몰입하게 만든다. 현실과 다른 세상이지만 현실과 밀접하게 발 붙어있는 영화란 매개체는, 우리에게 때로 위선 속에 가려진 진실이나 허구의 환경에서 솟아난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곤 한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 속에서 서로 조우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두 세상을 하나로 이어주는 매력이 바로 영화의 마법이다.


씨네필들은 영화를 통해 철학을 느낄 수 있다. 어떤 거대한 사상이나 한 인생의 일대기를 감상할 수도 있다. ‘잉마르 베리만’의 영화는 살아가면서 반드시 거쳐야 할 삶의 단계들을 제시한다. 죽음, 탄생, 신의 존재, 사랑과 늙음 등 인간이라면 한번쯤 고민해보고 겪어야 하는 직접적인 삶의 국면들을 영상에서 제시하는데, 무척 감각적이고 수십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보아도 촌스럽지 않다. 많은 영화감독들에게 사상적인 조류이자 영화 기법의 노하우를 제공해준 잉마르 베리만의 영화를 보며 우리는 보다 깊은 인식의 여정을 여행하게 된다.


가령 그의 작품인 ‘제 7의 봉인’에서는 죽음과 체스를 두는 주인공을 통해 삶이란 거대한 국면 속에서 우리가 터부시하는 죽음이란 요소가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를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페스트로 죽어나가는 시골의 주민들과 마녀 사냥을 당하는 소녀의 모습을 통해서 종교의 모순을 폭로하기도 한다. 잉마르 베리만은 영화를 통해 철학을 구현해냈다. 소련의 거장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작품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이것이 씨네필들이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우아한 매력이자 장점이지 않을까 싶다.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영화는 기본적인 줄거리 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이 존재하지만, 그것이 영화 특유의 역동성과 개성을 창출해내며 그것에 불나방처럼 이끌린 씨네필들이 많다. 데이비드 린치,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스튜어트 고든 등 다양한 작가주의 감독들이 컬트 영화로 불릴수 있다면 그들은 그들만의 문화를 창조해내고 있는 것이다. 영화가 기폭제가 되어 문화를 이끌고, 이는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구애하기에 충분하다.

반드시 오손 웰스, 존 포드, 장 르누아르, 뤼미에르의 형제에서 출발하지 않더라도 피터 잭슨의 초기작들이나 위에서 언급한 컬트 영화들을 보면서 자신만의 세계관을 형성하게 되면 그것은 그 사람만의 무기이자 인장이 된다. 다양한 영화들속에서 나만의 감상 기준이 생김에 따라, 적절한 사유의 훈련과 비평이 가능해지고 이는 더욱더 깊은 감상을 낳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모두가 평론가들처럼 영화를 볼 필요는 없겠지만, 영화를 보다 더 심도있고 깊이있게 본다면 얻을 수 있는 득이 실보다 훨씬 많을테니 말이다.

안개에 가려진 장막이 서서히 벗겨지듯 비로소 영화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진다면, 그때부터는 스스로 연출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길 수도 있다.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의 평론가였던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등 일부 평론가들이 수많은 영화들을 분석하고 비평한 결과, 영화감독으로 나아갈 수 있는 커리어의 전환점이 생겨났다. 그들이 찍은 영화들이 누벨바그를 이끌며 전세계 연출가들에게 혁명적인 영향력을 선사한 것은 씨네필이라면 대부분 아는 사실이다.


영화 감상과 비평, 그리고 연출은 따로 독립되어 있고 분리되어 있는 요소들이라기보다는, 뭉뚱그려 말하자면 모두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선분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마치 소설가와 시인의 출발점이 오롯이 문학 작품 감상에서 출발하듯, 영화도 마찬가지다. 씨네필들끼리 서로의 감상평을 듣고, 분석해보며 감상의 계기를 넓히고, 더 나아가 기회와 조건이 된다면 연출까지 해보며 감독으로의 위치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씨네필은 분명 우리에게 친숙한 ‘동네 아저씨’와 같다. 느긋한 미소로 우리에게 인사해주며 안부를 건네듯, 폐부를 찌르는 개성 만점의 영화들이 관객의 취향과 어우러져 영화를 더욱 사랑할 수 있게 만드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영화의 역사가 어느덧 100년이 넘었으니 그 사이 만들어진 다양한 영화들은 우리를 매혹시키기에 충분할 것이고, 자신이 끌리는 작품을 한 편, 두 편 감상해본다면 점점 견문이 넓어지고 영화라는 새로운 세계에 가닿는 그 과정을 직접적으로 느끼는 경험을 체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적은 비용과 조금의 시간을 들여 새로운 세상을 체험하는 영화인들의 일대기는 분명 씨네필의 위대한 출발에서 시작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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