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어가는 노을을 바라보며 추억을 회상했다. 스쳐 지나갔던 인연들에 대한 기억을 말이다.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내게 많은 것을 남기고 간 사람들이 있었다. 사랑을 알려줬고, 우정을 알려줬으며, 행복을 알려줬다. 굳이 남 탓을 하며 툴툴댈 필요 없이, 그들은 이방인같던 나를 따스하게 안아줬다. 내 마음은 그들에게로 향했고, 서툴렀던 나의 일상을 환하고 밝게 비쳐주었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사실은 더이상 그때와 같은 경험을 두 번 다시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많이 지났기 때문에, 추억을 공유했던 그때 그 사람들은 이미 흩어진지 오래였다. 마음 한구석에 작은 소란만 남긴 채 떠났고, 그때라는 말은 이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사어가 되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행복하다면 불행이란 말, 절망이란 말, 암흑이란 말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을 것이다. 기쁨이 있다면 슬픔이 있는 법이기에, 온도차가 극명한 양극단 사이에서 우리는 언제나 시소를 타곤 한다. 때로는 기쁨이 슬픔보다 무거워 가슴이 황홀해질 때도 있고, 또 때로는 슬픔이 기쁨보다 무거워 한없이 축축 처질 때도 있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렇고 그런 거지 뭐, 라며 웃어 넘기려 하지만 괜시리 마음 한구석이 아려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산다는 것은 이미 주어진 결과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려는 데 의미가 있는게 아닐까. 작은 발걸음 한 자국 한 자국이 위대한 업적을 낳는 법이다. 한명 한명의 목소리가 모여 합창을 이루듯이, 결국 인생은 작은 것들이 점차 쌓이고 쌓여 굵직한 선 하나를 가운데에 남기는 것이 아닐까.
세상 사람들에게 무엇이 가장 고민이냐고 묻는다면 제각기 다양한 대답을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돈, 어떤 사람은 사랑, 어떤 사람은 우정이라고 답하듯 천태만상의 사회 속에서 우리들은 제각각의 고민을 지니며 살아간다. 하룻밤낮 사이에도 여러명의 사람들이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고 있고, 야근과 압박에 시달려 치열한 생존경쟁에 고달파하는 사람들이 많다. 쉬고 싶지만, 도무지 편하게 쉴 수 없는 분위기는 우리를 더욱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리게 만든다. 남을 밟고 올라서야 내가 살아 남을 수 있으니 우리는 기계처럼 생존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일까. 아마 답은 쉬이 찾기 어려울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지금의 힘듦이 남들이 겪는 고통보다 더 크다고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언젠가는 우리의 고통이 보다 값지고 의미있는 결과로 바뀌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까지 잠깐 숨을 고르면 된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가슴 벅차오를 때까지 운동장을 뛰어 보기도 하고, 치열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숨을 돌리고 쉬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다.
세상은 우리의 뜻대로 움직이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지향하는 삶의 목표를 향해 조금씩 우리의 발자국을 옮겨 놓을 것이다. 숨 쉬는 동안에는 죽음이 저 멀리 달아나 있으며, 심장이 뛰는 순간만큼은 우리는 살아 존재한다. 많은 것들을 느끼고 포용하기. 인간은 강한 존재이며, 강한 존재일 것이고, 앞으로도 쭉 그러할 것이라 믿는다. 사랑, 슬픔, 기쁨, 환희, 절망, 그리고 추억 속에서 우리는 또다시 꿈틀거리고 고통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성숙한 자세로 먼 미래를 마주하게 된다면, 언젠가 삶이 제시하는 아름다운 답과 보물을 찾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