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일생이 야속하게도 한 번의 기회로서 끝이 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번 생을 최고로 잘 살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부귀영화를 누려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얻는 것이 생의 최고 목표일까? 아니면 남을 돕고 선행을 많이 베풀어서 공덕을 많이 쌓는 것이 훌륭한 삶일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 것처럼, 올바른 사고방식에 올바른 삶이 비로소 어울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 ‘동감’의 배우 김하늘이 말한 대사처럼,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향기란 게 있다. 그 사람이 지금껏 인생을 살아왔던 총체적인 연대기가 하나의 향기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40대 이후의 삶은 그 사람의 표정에서 드러난다고 하는 것처럼, 그 사람에게서만 느껴지는 독특한 아우라가 나이가 들며 점점 나타나게 된다. 좋은 아우라를 갖기 위해서는 우리의 사고방식과 생각부터 건전하고 정직해야 한다. 즉, 덕의 품성을 바탕으로 삶을 살 때 인간은 바람직한 향기를 내뿜을 수 있다. 만약 내가 남들이 보았을 때 께름칙한 일을 몰래 했다거나,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평소에 지니고 살아간다면 그것이 습관으로 나타나거나 소위 말하는 나쁜 기운을 품어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혹자는 현대 사회에서 덕과 정의를 추구하는 것은 현실과 어울리지 않는 바보들이 하는 말이 아니냐고 주장하기도 한다. 동양의 사상에서 인간을 짐승의 성질과 같은 금수의 마음도 있지만, ‘인의예지의 덕’도 마음속에 지니고 있다고 본다. 덕을 지향하고 올바름을 추구하는 삶이 기준이 되어야만 우리는 아름다운 향기를 지닌 채로 살아갈 수 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으로서 지녀야 하는 품격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희랍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지성적 덕과 품성적 덕’은 무지에서 벗어나 앎을 추구하고, 습관과 노력을 바탕으로 그 덕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통해 나를 성장하는 기쁨을 맛보게 해준다. 또한 4대 종교 중 불교의 창시자였던 싯다르타, 인류의 죄를 대속한 예수 그리스도처럼 인간의 덕이 광대무변한 한계 끝까지 나아가면 인류는 새로운 차원에 이르게 된다. 중생의 교화가 가능해지며 양심 있는 사회로 자라난다. 곳간에서 인심이 나듯, 덕이 있는 곳에서 인간의 삶은 정의에 비로소 가까워진다.
옛 선비들의 정신처럼, 아름다운 삶이란 덕의 삶을 의미한다. 내면에 내재한 신성한 덕을 확충해서 살아갈 때 비로소 인간으로서의 삶이 온전히 실현된다. 인간의 향기는 삶의 방향성이 어떻느냐에 따라 확연히 달라지리라 생각한다. 우리가 성스러움과 궁극적인 가치를 추구할 가능성이 높은 삶을 받아들일 때, 악취가 아닌 꽃의 향기가 우리를 가득 메울 것이다. 또한 ‘일일신우일신’이라는 말이 있듯, 나날이 나아지는 삶으로서 심신을 갈고 닦는다면, 최소한의 인간으로서 품격을 유지한 채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기쁨이 있는 삶은 덕의 길에 의해 충만해진다. 그것은 나비를 불러들이는 꽃의 향기처럼 사람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리라 생각한다. 덕은 곧 향기이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요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