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의 두 번째 편지

by 이동훈

L의 두 번째 편지입니다. 날씨가 심상치가 않아요. 밤중에 번개가 치고, 천둥 소리가 들려오고 후두둑 떨어지는 빗소리 때문에 잠에서 깨어나기 여러번이었네요. 어젯 밤은 유독 무서웠던 것 같아요. 혹시 집이 무너지는 건 아닌지, 집 뒤에 위치한 산속에서 토사물들이 내려오는 건 아닌지 걱정도 했답니다. 그래도 아무 탈 없이 다음 날이 되었고, 지금은 비가 그쳐 해가 쨍쨍하게 떠 있는 낮이네요. 여러모로 다행입니다.

한동안 많이 생각해봤답니다. 어째서 만물은 변하고 우리 주위를 둘러싼 자연 역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거치며 순환할까 하는 사실을요. 고대 희랍의 자연철학자들은 자연의 근본적인 성질을 물, 불, 공기와 같은 원소에서 찾으려고 했어요. 탈레스, 헤라클레이토스, 아낙사고라스 같이 아직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삶을 살던 현자들이 나름의 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요. 지금은 천둥이 치고 번개가 땅바닥에 내리꽂히는 이유가 대기의 변동과 여러 과학적인 이유로 설명이 가능하지만 그때는 그게 불가능했으니까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는 않았더라도 참 노력이 가상한 것 같아요. 그때 그 정신을 물려 받아서 지금의 과학자들이 연구를 진행하며 참된 자연의 법칙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참 재밌지요.

서론이 길어졌네요. 요즘 저는 시간이 날때마다 틈틈이 독서를 하고 있어요. 최근에 읽은 책으로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이란 도서가 있습니다. 아마 들어보신 분들은 많이들 들어보셨을 거에요. 한 인간의 위대한 일대기를 고백한 정전이자, 훌륭한 그리스도교의 고전으로 사람들에게 지금까지 널리 읽히고 있지요. 저는 이 책을 우연히 교보문고에서 보게 되었어요. 종교 코너 구석에 꽂혀있던 책 한 권을 집어들었더니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이었습니다. 자리에 앉아 한 장 두 장, 페이지를 넘기다보니 어느덧 아우구스티누스의 삶에 깊숙이 빠져들었고 그가 살았던 일대기에 깊은 감명을 받았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알다시피 로마 시대에 살았던 그리스도교도입니다. 어거스틴이라고도 불리며, 초기 그리스도교 신학의 체계를 마련한 교부 철학자이죠.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렸을 적부터 카르타고로 유학을 가 수사학과 당대의 철학을 배우게 됩니다. 꽤나 집이 잘 살았던 모양이에요. 예나 지금이나 유학을 가려면 막대한 돈이 들기 마련이거든요. 아버지의 도움으로 공부를 시작한 아우구스티누스는 젊은 시절에 방황도 해보고, 여러 종교에 기웃거리기도 하면서 그리스도교도의 초석을 닦아 나가기 시작합니다. 마니교라는 당시에 유행하던 종교에 빠지기도 하고, 플라톤 철학을 공부하기도 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 대화하며 경험의 폭을 넓혀갑니다. 그러던 도중 우연히 하느님의 말씀을 듣게 되고 회심하여 본격적인 그리스도교도로 살아가게 되지요. 이 회심의 과정이 참 감동스럽게 묘사됩니다. 아마 나무가 있는 정원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한 아이의 목소리가 머리속에서 울려 퍼지듯 들려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책을 펴고 말씀을 익히라는 그 아이의 말을 듣고 한없는 눈물을 흘리며 주님께 모든 걸 바치기로 결심하죠. 아름다운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현대는 종교와는 거리가 조금 먼, 아니 조금이라는 표현보다는 ‘많이’라는 표현이 났겠네요. 현대는 종교와는 거리가 많이 먼 세상이 되었습니다. 물질이 정신보다 우위에 서서 고결한 가치들은 무시되고, 돈과 권력과 같은 세속적인 가치들이 사람들에게 인정받기에 이르렀지요. 지금 이 시점에서 철학을 공부한다는 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정말 살아가는데 도움을, 쌀 한 톨 만큼의 양이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건가 하는 의문도 듭니다. 하지만 저는 철학의 힘을 믿습니다. 우리를 보다 높은 신성의 세계와 연결하게 만드는 그 철학의 힘, 플라톤이 주장한, 플로티노스가 주장한,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그 철학의 힘을 저는 믿습니다. 아마 이 가치는 약해지면 약해졌지 영영 사라지지는 않을 거에요. 프로메테우스의 횃불이 타오르듯, 올림픽의 불꽃이 꺼지지 않듯 우리 주위에 영원히 살아 숨쉬리라 생각합니다.


이번 기회에 철학을 공부해보는 건 어떨까요? 그리 어렵지 않을 거에요. 사실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게 다 철학이라고 볼 수 있거든요. 누군가가 이상한 주장을 하면 우리는 그걸 개똥철학이라고도 부르고, 길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철학관에 들러 사주 팔자를 봐보기도 합니다. 그만큼 철학이란 말은 우리 주위에 자주 사용되고, 또 묘하게 가르침을 줄 것만 같은 인상을 풍기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시작은 간단해요. 철학에 관련된 아무 책을 집어 들고 한번 읽어 보세요. 아마 처음에는 이해가 단번에 가지 않으실거에요. 책이 저술된 시대와 지금은 괴리가 상당히 있는 편이고, 배경 지식 없이는 철학책을 읽어나가기가 힘드니까요. 인터넷도 검색해보고, 사람들의 의견도 찾아가면서 책을 읽다보면 철학의 기초는 잡히리라 생각합니다. 반드시 정규 교육을 받지 않더라도(물론 받으면 더 좋겠지만), 원서를 하나 하나 독파해가면서 공부해보시는 걸 추천드려요. 아마 색다른 즐거움과 지적인 희열을 느끼실겁니다.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아무쪼록 날씨가 무더운데 건강에 유의하시고 항상 하시는 일 모두 잘 풀리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이상 L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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