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에게 많은 것을 빚지며 살아간다. 서로를 이어주는 작은 도움 하나하나가 모여 공동체와 사회를 이루고, 이는 다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선사한다. 개인과 집단의 관계는 우리 몸의 신체와 같다. 각 부분을 이루는 구성 요소들이 하나의 몸을 이루고, 그 하나의 몸이 나를 규정하는 것처럼 어느 것 하나 제외하고 논할 수가 없다. 손가락이 있어서 물건을 집을 수 있으며, 발이 있기에 걸을 수 있다. 신체의 부위들이 모여 살아 숨쉬는 내가 된다. 내가 사회라면 신체의 부위들은 개인에 해당한다. 당연한 명제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생각해보면 서로가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관계이다. 불교로 비유하자면 연기법인 것이다.
프랑스는 혁명을 통해 왕을 몰아냈다. 앙시앵 레짐이라고 불리우는 구조적 불평등을 신흥 부르주아가 걷어차 버린 것이다. 민중들과 힘을 결탁해 왕권을 몰아내고 새로운 정치 체제를 세워버렸다. 각 개인들을 제대로 보살피지 않은 사회에 날린 거대한 일격이었다. 이처럼 사회가 제대로 구성원들을 돌보지 않는다면 개개인은 불만이 쌓여 언젠가 폭발하고 말 것이다. 손가락, 발가락, 무릎 등 인체를 구성하는 다양한 부위를 관리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생겨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는 것처럼 말이다. 사회는 개인의 집합이 모여 이루어진 곳이다. 개인이 없다면 사회가 없고, 또 사회가 없다면 개인을 지켜줄 수 없다. 불가분의 관계다.
참된 정치란 자고로 국민의 마음을 읽고, 국민과 함께 하며 국가의 안위를 책임지는 것이다. 국민들을 무시하며 기득권만 물질적 이익을 누린다면 그보다 아래에 속한 계층들은 고통을 겪는다. 상생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를 하는 지도자가 올바를 때에야만, 국민들도 고통없이 편안하게 두발 뻗고 잠드는 법이다. 만약 윗물이 맑지 못하다면 덩달아 아랫물도 흐려지고 흙과 먼지가 가득한 부유물들에 휩싸여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국민들은 지도자를 믿고 따라야 할 필요가 있으며, 지도자 역시 이에 부응하기 위해 국민들의 삶을 보살펴 주어야만한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처럼 혼란한 나라에서는 왕의 판단력과 정치적인 능력이 무척 중요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국제 정세속에서 올바른 처세를 해야하고, 외교를 통해 자국의 이익을 지켜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사회가 격변하고 심각한 혼란기에 다다를수록 지도자의 능력은 더욱 중요해진다. 현재의 한국은 춘추전국시대처럼 오늘내일하며 나라가 위태로움에 빠지는 상황은 아니지만, 무엇보다 국민들의 단결과 정치 지도자들의 올바른 역량이 필요할 때라고 생각한다.
아마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시민들은 작년에 일어났던 계엄 사태를 기억할 것이다. 여당과 야당의 대립이 격화되어 더이상의 의사소통이 불가하다고 판단한 윤석열 전 대통령은 계엄령을 내렸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군부정치 이래로 내려진 현세대에 알맞지 않은, 조금은 독단적인 계엄령이었다. 현재 윤대통령은 몇 평 남짓한 구치소에 수용되어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어떤 결과가 기다릴지는 모르겠으나, 윤대통령을 지지하는 국민들은 그에게 끊임없는 위로와 위안을 건네고 있다.
정치는 늘 어려운 것이다. 높은 직위인만큼 한마디 말을 하더라도 무게감 있게 내뱉어야하며, 자기가 제시한 생각에 대해서는 책임감있게 지켜야 한다. 정합성에 어긋나지 않게 행동할 때 비로소 정치 지도자의 위신이 세워지는 것이다. 지도자의 처신이 중요하거늘 하물며 가벼운 언행과 국민들에게 의문만 남기는 부적절한 행위들은 철저히 지양되어야 한다. 여당이 정권을 잡은지 약 한 달 가량의 시간이 지났고, 앞으로 현 대통령이 어떤 정치를 보일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올바른 지도자의 정치 아래에서만이 국민들이 자신들의 생업에 보다 열정적으로 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를 살리는 것도 좋고, 외교 관계를 공고히 하는 것도 좋으니 어떤 행동이든 책임감을 갖고 국민들에게 대해야 할 것이다. 자식이 부모의 등 뒤를 보고 배우듯, 국민들도 자신이 뽑은 정치 지도자의 뒷모습을 보며 배우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