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편지에는 어떤 내용을 담을까 좋을지 고민해보다가, 죽음과 노화에 대해 말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매일 우리 몸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대화의 주제로 꺼내기는 그리 적합하지 않은 소재들입니다. 결국 끝에 가서는 무엇이 우리를 기다릴지 필연적으로 알 수밖에 없는 인생, 모든 생명체가 맞이하는 운명에 대한 이야기말이지요.
아마 1년을 1달처럼 느끼는 사람도 있을테고, 1년을 2년처럼 느끼는 사람도 있을거에요. 사람마다 시간의 빠르기를 다르게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점점 더 빠르게 흘러가는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비슷한 일상이 반복되어 그다지 기억에 남을만한 인상을 주지 못하는 날도 많아집니다. 그날이 그날같고, 어제가 오늘 같은 뭐 그런 날들의 연속이죠. 아마 대부분 공감하리라 생각합니다.
인간은 왜 늙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일까요? 모든 생명체는 늙습니다. 생로병사의 고통이지요. 영생을 누리려던 과거의 진시황도 결국 죽음을 맞았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 역시도 언젠가 죽을테고,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도 언젠가 죽음을 맞이할겁니다. 많은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정작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우릴 기다리고 있는지는 밝혀진 게 없습니다. 기독교의 천국과 지옥, 불교의 윤회설처럼 각 종교에서는 다양한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과학적으로 밝혀진 사실은 아직 뚜렷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초월한 현자의 모습일겁니다. 누구나 죽음 앞에서는 평등하지만, 죽는 그 순간에 어떤 품위를 갖느냐는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고통에 절규하며 자신의 죽음을 부정하는 사람도 있을테고, 소크라테스처럼 이성을 동원해 결연한 모습으로 죽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죽음을 원하시나요? 죽는 상상을 하면 그리 유쾌하진 않을 겁니다. 대부분 강한 고통이 우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지요.
아직 살날이 많이 남은 저이지만 서른이 넘으니 한번쯤 죽음에 대해 고민을 해보는 시간을 종종 갖게 됩니다. 더불어 어떻게 살아야 훌륭한 삶을 살 수 있을지 고민도 많이 해보게 되구요. 누군가는 젊은 녀석이 뭐 그리 쓸데없는 고민을 하냐며 핀잔을 줄 수도 있겠지만, 삶의 모든 부분들은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죽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갑자기 다음날 심장마비로 사망할 수도 있고, 교통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고, 자연재해로 인해 어제와는 다른 운명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저 또한 죽음이 두렵습니다. 늙는 것도 두렵구요. 내일이 다가올 때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조바심도 들기 마련입니다. 아직까지는 결혼 생각이 없기 때문에 가끔씩 홀로 늙는 상상을 해보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혹시 고독사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은 아닌지 무섭기도 합니다. 자식을 낳지 않고 대가 끊긴다면 말이지요. 참, 이 죽음과 고통이란 건 인간에게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인가 봅니다.
어떤 것을 원한다는 것은 곧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욕망은 생의 원동력이지만 그것이 언젠가 사라진다는 사실은 우리의 마음에 깊은 허무를 드리우곤 합니다.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해도 머지않아 이별을 맞이한다면, 그것만큼 슬픈 일은 또 없겠지요? 사랑도 이렇거늘 인생을 살아가면서 맺는 모든 관계가 언젠가 유한하다는 걸 알면 섣불리 관계를 맺기가 두려워지기도 합니다.
그러니 독자 여러분도 우리의 인생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루하루를 천사가 나에게 준 무엇보다 소중한 선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삶이 조금은 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매 순간이 희망으로 이어져 있으며, 기적이고, 축복이라는 관점에서는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게 되거든요. 아마 이 거대한 삶은 우리 스스로 유한함을 인식하고 겸허히 받아들일 때 더욱 빛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오늘부터 죽음 앞에서도 의연해질 수 있는 경건함과 삶의 감사함을 느끼도록 일종의 다짐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내게 주어진 하루가 사실은 죽음이란 운명에서 기적적으로 벗어나 +1이 추가된 것처럼 새로운 혜택을 받은 삶이라고 말입니다. 이상 L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