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보면 끔찍한 사건들이 예상외로 일상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살인사건, 절도, 방화, 사기 등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폐를 끼쳐 손해를 입히는 상황들이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우리 주위에도 불현듯 포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얼마 되지 않는 돈을 모아 전세자금으로 사용하려 했던 사회 초년생은 전세사기를 당해 전재산을 날리기도 하고, 아버지가 직접 만든 공기총으로 아들을 살해하는 반인륜적인 상황도 벌어지곤 한다. 꼭 흉악범들이 아니더라도, 선량한 얼굴을 지닌 우리의 이웃사촌들이 이중적인 모습을 가린 채로 이런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는 무서운 세상이다. 눈 뜨고 코 베이기 쉽다.
이러한 세태 속에서 직업적 성취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올바름의 자세가 무척 중요하다는 사실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우리는 이를 위해 ‘독서’를 통해 생각의 힘을 기르고 인지의 수준을 높여야한다. 문학, 역사, 과학, 정치, 경제 등 여러 분야의 독서를 통해 생각의 힘을 길러 세상의 풍파에 맞서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현인이라 불리우는 나보다 먼저 삶을 살아갔던 지혜로운 이들의 생각과 견해를 접하다 보면 올바른 선택을 내릴 수 있다. 만약 어떤 상황에서 자신이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고민하고 있는 분야에 대해서 적어도 10권 이상의 책을 읽고 나면 아무 대책이 없을 때보다 비교적 현명한 대처 방법을 알아낼 수 있다. 이미 그것에 대해 많이 고민해봤던 사람들의 대답이기에 나름 신뢰할 수도 있다.
독서를 할 때, 문제 상황에 대해 치열한 고민을 했던 저자들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이를 비판적으로 다시 걸러서 인식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책을 처음 읽을 당시에는 멋도 모르고 저자가 말하는 내용을 무조건적으로 흡수하게 된다. 자신의 견해가 뚜렷하게 서지 않았기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처음은 비록 이렇게 시작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 여러 권의 독서를 통해 다양한 저자들의 생각들을 비교 분석하고 견해를 살피다보면, 자연스레 자신만의 일정한 가치관 같은 것이 형성됨을 느낄 수 있다.
비판적 독서는 악기를 배우는 과정과 유사하다. 피아노를 배우거나 춤을 추는 사람들이 처음에는 일종의 루틴과 학습 과정을 따라 모방하다가, 일정 수준에 이르면 자신의 스타일대로 연주를 진행하듯이, 독서도 그와 유사한 과정을 거친다. 따라서 독서가 익숙치 않은 초심자들은 비판적 독서가 도대체 왜 이루어지지 않을까라며 노심초사할 필요는 없다. 여러 권의 책을 계속 읽고 생각하는 힘을 기르다 보면 자연스레 자신만의 정체성과 신념, 가치관이 형성될 것이다. 지식을 흡수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일종의 무위)과 자신만의 기준으로 지식들을 걸러내는 부분적인 노력(일종의 인위)을 더해 비율을 반반 정도로 섞어 독서를 진행하면 된다.
또한 현대사회가 되면서 물질은 발달하고 예전에 비해 풍족해졌을지라도, 사람들의 정신은 물질 문명의 진보된 수준에 맞게끔 발전하지 못했다. 스마트폰을 통해 세계 각지와 교류하고 SNS를 통해 자신의 근황을 단시간에 알릴 수도 있지만, 그 과정 속에 내재한 비교의식과 열등감은 사라지지 않고 우리 주위를 맴돈다. 사람들이 고도로 연결되고 밀접하게 붙어 있는 현시대에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남과 나를 구분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분별력’ 역시 중요하다. 문학과 같은 감성적 독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단단히 형성해주기에 이 과정에서 큰 보탬이 되리라 생각한다.
수천년 동안 이어진 인류의 지혜이기에, 독서의 힘은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끊임없는 사고의 훈련과 생각의 발전은 인간의 인격을 한 단계 올려주고, 삶의 문제에 대처하게 만든다. 여행을 가지 않더라도, 유명 인물과 만나서 대화할 순 없을지라도 그들이 저술한 책을 통해서 견문을 넓히고 인식을 늘려가면 된다. 현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이 배를 모는 조타수라면, 독서라는 북극성은 드넓은 세상에서 단단한 길잡이가 되어준다. 여행에 첫발을 떼기 시작한다면 그 후로는 순풍에 돛단배가 항해하듯 수월하게 나아갈 것이다. 질시와 혐오, 비난과 악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독서를 통해 위대한 항로로 나아가려는 독자들에게 건투를 비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