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은 초년에 꽃을 피우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말년에 가서 느지막이 주목을 받는 경우도 있다. 사람은 제각기 꽃이 피는 시기가 다른 법이다.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그때, 정말로 그때 딱 ‘쌩깠어야 됐나보다’. 뭘 쌩깠어야 됐냐고? 부정적인 반응을, 주변에서 콩을 내놓으라고 하든 팥을 내놓으라고 하든, 어떤 말이든 상관없이 우직하게 내 길을 갔었어야 됐나보다. 누가 뭐라하든 신경 쓰지 않고 내 길을 갔었어야 하는데 싶은 그 심정. 결국 책임은 자기 자신이 지는 법이지만 약간의 후회는 남는다. 좀 더 나답게 살아볼걸. 나다움을 찾아보면 좋았으련만. 뭐, 후회는 남지만 어쨌든 내 길을 가긴 갔다. 하지만 결과는... (웃음)
흘러가는 대로, 시간 따라 바람 따라 유유자적하며 살았다. 대학 입시 이후로는 치열한 삶을 살아본 적이 없었다. 글을 썼고, 공상에 빠졌고, 독서를 했지만 죽자사자 달려든 건 아니었다. 동년배들이 집과 차를 장만하고, 결혼을 알리기 위해 청첩장을 주던 시기에 오히려 나는 여유를 부렸다. 작가지망생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버젓이 안빈낙도한 30대 초반의 심정을 그 누가 알리오. 하루살이처럼 살아간 결과, 자본주의 사회에서 피라고 불리우는 ‘돈’은.. 없다. 정말로 없다. 큰일이다.
모두들 조금씩은 후회를 하며 살아간다. 예전의 나도 그랬다. 앞으로 두 발짝 나아가면, 세 번째 발자국은 뒤로 걷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윷놀이의 ‘빽도’ 같은 거다. 왜 그랬냐고 묻거든,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지나치게 빨리 가는 건 두려웠다. 무슨 일을 겪을지 종잡을 수 없었고, 이 길이 맞나에 대한 의심도 들었다. 가까이에서 본다면 단거리달리기 같지만, 멀리서 본다면 42.195Km 마라톤 완주였다. 하루하루는 빨리빨리, 먼 미래는 느릿느릿. 그렇게 살았다.
진전이 없어 보일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진전이 없으면 어떠하리. 모두가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법은 아니다. 머물러 있는 것도 엄연한 선택이다. 남들은 모두 앞으로 나아갈 때 자기 자신만 머물러 있는 것도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니다. 무모하지만 뚝심이 필요하다. 거친 물결 속에서 자신만의 보금자리를 틀어버린 채 대세를 따르지 않는다는 건, 경고등이 매일 울려대지만 이를 무시하고 살아간다는 말과 같다. 웬만한 멘탈로는 불가능하다.
밀고 당기기. 밀었다가 당겼다가. 다시 당겼다가 밀었다가. 인생의 무게중심이 가운데 쏠려 있다면 기쁠 때는 힘을 줘서 밀어 보기도 하고, 슬플 때는 시계추처럼 왔던 길로 다시 당겨지기도 해보자. 그러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법이다. 첫술에 배부를 순 없다. 자신만의 페이스를 꾸준하게 따르는 거북이는 우사인 볼트도 이길 수 있다고 믿는다. 영차영차 달리다 보면 어느덧 결승점은 코앞에 이른다.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비록 목표가 언제 이뤄진다고 호언장담할 순 없지만, 희망은 잃고 싶지 않다. 골인에 이를 때까지 희망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 아무도 저버릴 수 없는 마음. 그것이 내 마음이다.
설령 쉽게 포기한다고 한들, 여기서 끝이 나는 건 아니다. to be continued. 드라마는 계속되고, 영화는 끝나지 않고, 만화는 쭉쭉 연재된다. 그것은 인생의 순리와 같다. 거대한 흐름 안에서 다양한 것들을 마주하며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은 죽음 앞에 이르기 직전까지는 영원한 법이다. 삶이라는 긴 과정, 그 여정에서만큼은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살아가자. 힘들어도 살고, 즐거워도 살고, 어떻게든 살아가자. 시간이 지나 나의 시기가 도래한다면,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터널에 숨구멍이 탁하고 트일 것이다. 케세라세라(Que será será), 결국 무엇이든지 될 일은 이루어질지니. 너무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난 무릎 성성한 두 다리 쫙 펴고, 내 페이스대로 달리길 결심한다. 걷다가, 또 뛰다가 그러면서 사람은 성장하는 법이니까.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