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라는 건 나를 의미한다. 내 취향, 내 취미, 내 고집 등 이 모든 것들을 자아라는 말로 뭉뚱그려 표현할 수 있다면 자아의 범위는 무척 다양할 것이다. 위기 상황에서 나를 지켜주고, 내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자아는 우리의 신체 부위에서도 아마 뇌 또는 심장 어딘가에 위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의식의 일부로서 작동할 수도, 이집트인들이 생각했듯 생명의 원동력인 심장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위치야 어디든, 중요한 점은 자아가 그 사람의 생명력과 존재를 드러내는 지표에 해당한다는 사실이다.
자아가 비대해지면 자칫 곤란해진다. 내 목소리가 남들보다 더 커야만 하고, 내 주장만이 유일한 답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의 의견을 수용하지 못한 채 나를 위한 건설적인 비판마저도 납득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점점 고립되고 ‘나’라는 굳건한 성에 갇혀 노예를 자처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비극적인 결과를 맞이하고 만다. 자아의 파괴성과 무시무시함으로 대표되는 이런 예들은 주위에서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다. 내가 제일 잘났다며 남들의 성과를 내려치고, 시기와 질투로 상대방의 공을 가로채는 등 일터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예시처럼 말이다.
자아는 우리의 경계를 세워주기도 하지만, 파괴적인 속성도 지니고 있기에 언제나 자아의 목소리를 조절하고 훈련할 필요가 있다. 마치 조련사가 야수를 길들이듯, 뜨겁고 과열될 수 있는 자아의 비대함을 막고 우리의 몸과 마음이 부드럽게 조화되도록 말이다. 사람은 개개인을 대변할 수 있는 자아를 지니고 있지만, 이를 적절하게 길들이고 교육하지 못한다면 자아에 압도된 채로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에 처하고 만다.
자아를 길들이기 위해서는 자아의 붕괴 과정이 일부분 필요하다. 기존의 정신 상태에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원래 하던 대로, 자아가 늘 하던 대로 기존의 선택을 이어 나갈지, 아니면 기존의 관념을 잊어버리고 새로운 행동 양식을 취할지 말이다. 자아 붕괴는 정신적 각성을 유발하는데, 이로 인해 자신을 구성하고 있던 자아의 개별적인 요소들이 변하거나 사라진다. 그야말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자아가 해체되고 나면, 마음은 텅 비고 고요해진다. 따라서 기존의 보상 체계가 무의미해져 삶의 의욕이나 동기를 잃게 되고 만다. 일시적인 우울감으로 느낄 수 있겠지만, 이는 영적인 성장을 의미하는 ‘영혼의 어두운 밤’과 관련이 깊다. ‘영혼의 어두운 밤’이란 기독교 신비주의 전통에서 유래한 표현으로서, 영적 성장의 전환기에 겪는 고통을 의미한다. 이러한 어두운 시기에는 깊은 고통으로 인해 자아가 붕괴되고, 나라는 요소를 이루는 부분들이 변하거나 사라지게 되는데, 이때 일종의 무목적성 상태를 지닌 채로 한동안 살아가게 된다. 가령, 실연을 당한 사람처럼 큰 상실감에 빠진다거나 그저 흘러가는 대로, 시간이 지나가는 대로 바람처럼 살게 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 ‘영혼의 어두운 밤’이란 과정에서 우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고통은 무척 날카롭고 깊다. 끊임없는 강박, 또는 과거의 후회와 잘못된 선택을 떠올리며 그로 인한 깊은 상실감이 우리를 괴롭힌다. 이 과정에서 기존에 알고 지내던 인간관계가 대부분 변하거나 축소되고 심하면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의식의 흐름이 주로 ‘내면’으로 모여, 사회적으로 요구하는 세속적 기준들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이는 영적 성장을 촉진하는 계기로서 작용하며, 이 시기를 잘 견디고 넘어간다면 우리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탈바꿈한다. 욕망을 부르짖던 자아의 목소리에서 벗어나, 내면의 침착함과 ‘참나’라 불리는 근원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고, 본격적으로 나만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된다. 단단한 껍질을 깨고, 알에서 뛰쳐나온 병아리처럼 새로운 삶을 맞이하는 것이다. 일종의 ‘부활’처럼 말이다.
혹자는 이를 사회적 후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오히려 영적인 침체기를 겪었기에 사회에서 멀어지고, 인간의 원동력을 구성하는 보상 체계가 어긋나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살아가지 못하게 만든다고 말이다. 하지만 크나큰 상실과 고통 이후에 따르는 영적인 성장은 우리에게 다양한 기쁨을 맛보게 해준다. 의미 없이 지나쳤던 ‘일몰과 일출’의 기쁨이 직접적으로 와닿는다거나, 살아 있다는 사실 그 자체 하나로서 모든 것이 ‘경이롭게’ 느껴지고, 다른 대상이나 생명과의 ‘일체감’이 느껴지는 등 변화 이전의 삶에서 경험할 수 없는 일을 체험하곤 한다.
자아의 붕괴,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영혼의 어두운 밤은 분명 우리에게 힘들고 기나긴 시련의 시간이다. 비유컨대 지구라는 행성에도 빙하기와 소행성 충돌이 닥쳐왔지만, 소수의 종들이 살아남아 지구를 더욱 풍성하고 강하게 만들었던 과거가 존재한다. 영적 침체기를 겪고 나면 우리의 마음도 떨어질 부분은 떨어져 나가고, 존속할 부분은 내면에 뿌리 깊게 내려 더 강해지고 만다. 절망이 희망으로 변하고, 위기가 단련으로 대체되는 이런 시기는 인간의 삶에 한번쯤 찾아오는 자아의 성인식인 것이다. 우린 그 길을 인식하고 고요히, 그리고 묵묵히 나아가면 된다. 결국 자아의 위기는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가장 깊은 선물이 되어줄 것이다.